[밀물썰물] 단 1점만을 위한 전시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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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핵심은 전시실이다. 우리가 흔히 “박물관에 간다”고 말할 때도 대개는 전시를 보러 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박물관은 늘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한다. 전시 주제와 유물의 선택에서부터 전시실의 색과 조명, 진열장 높이와 동선, 설명문 하나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치열한 설계의 산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안에만 해도 전시실은 수십 개에 이른다. 안내지나 안내판만으로는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해외의 유명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유물이 전시실에 빼곡히 들어서 있어 하루이틀 관람으로는 모두 보기 힘들다. 한때 박물관의 미덕은 얼마나 많은 유물을 보여주느냐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박물관의 목표는 달라지고 있다. 많이 보여주기보다 단 한 점의 유물이라도 관람객의 기억에 오래 남게 하려는 방향이다. 국내에서는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문을 연 ‘사유의 방’이 전환점이 됐다. 440㎡ 공간에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을 전시했다. 같은 박물관 내 ‘손기정 기증 청동 투구’ 전시실 역시 유물 하나만으로 서사를 완성했다. 이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의 ‘신라금관 특별전’으로 이어진다. 유물 수를 줄이는 대신 깊게 들여다보게 하는 방식이다. 얼핏 썰렁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이런 전시를 다녀온 이들은 “유물을 제대로 본 느낌”이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1년 10월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재개관한 뭉크 미술관은 기존 미술관을 13층 규모의 신축 건물로 옮기며, 에드바르 뭉크의 대표작 ‘절규’만을 위한 전시실을 새롭게 마련했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역시 리노베이션을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전용 전시 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올해 초 밝힌 바 있다.

최근 문을 연 국립부여박물관의 백제금동대향로 전용 전시관은 이런 전시 흐름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전시관은 향로 구조를 본떠 3층 규모로 지어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처럼 특정 유물을 위해 전시실이 조성된 경우는 있었지만, 건물 자체가 한 유물을 위해 설계된 것은 처음이다. 전시실은 빛을 극도로 절제하고 조명을 오직 향로에만 집중시켰다. 이런 전시 앞에서 관람객은 관람의 속도를 늦춘다. 설명문을 읽고 조각 하나하나를 살피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만큼 유물 관람은 깊어진다. 보이지 않던 부분도 보이기 시작한다. 박물관의 변화는 결국 관람객을 향한 배려다. 많이 보지 않아도 오래 남는 관람, 그것이 오늘날 박물관이 건네는 제안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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