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000만 노인 인구 시대, 일할 권리를 설계하자
김영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옛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빈곤은 개인의 의지로만 해결하거나 일시적 지원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세계가 인정하는 경제 성장을 이룬 나라가 되었지만, 노인의 빈곤 문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그늘로 남아 있다. 이제 질문은 분명하다. 고도의 성장 이후의 대한민국은 노인의 빈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법은 ‘현금 지원만이 복지’라는 인식을 넘어서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하는 공적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원이 ‘삶의 예측 가능성’을 넓히지 못하면, 빈곤은 반복되고 삶의 질은 개선되기 어렵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복지는 돈을 주는 데서 끝나는 복지가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역량과 선택권을 제공하는 복지다. 나는 그 답을 직업교육과 일자리 창출에서 찾는다.
오늘의 노년층은 더 오래 살고,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고, 3명 중 1명은 취업 상태이지만 나머지 3명 중 2명은 일자리가 없어 안정적인 근로소득 기반이 취약하다는 보도가 있다. 반면 장년층에게 설문조사를 해보니 그들이 생각하는 적정 은퇴 연령은 평균 73.4세에 이른다. 그러나 노동시장 바깥으로 밀려난 중장년에게 ‘일’을 개인의 의지로만 찾을 수 없기에 ‘기회의 제공’이 필요하다. 기술 변화는 빠르고, 일자리의 요구 역량은 달라진다. 결국 중장년과 노년 빈곤을 줄이기 위해서는 재취업과 전직이 가능한 실질적 경로를 국가가 만들어야 한다.
그 경로의 중심에 전 생애 평생직업교육이 있어야 한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직업교육은 청년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출생률 하락과 기대수명 증가로 학습의 주체가 바뀌고 있다. 머지않아 중장년 학습자가 청년 학습자를 앞지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이제 직업교육은 청년 취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정책이자 노후 빈곤 해법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준비된 기반을 갖고 있다. 전국 129개 전문대학, 약 50만 재학생 규모의 고등직업교육 인프라는 지역 곳곳에 촘촘히 존재한다. 전문대학이 중장년에게 맞는 단기·집중형 교육과정, 자격 연계 과정, 현장 실습과 프로젝트 기반 훈련을 제공하고, 지역 산업과 연결된 채용 매칭까지 수행한다면 교육에서 취업까지의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일자리도 단순한 양적 확대가 아니라, 지역 산업 수요에 맞춘 전환형 일자리, 숙련된 직무역량을 살리는 고령친화 직무, 디지털·서비스 직무로의 이동을 지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함께 가야 한다.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직업교육법이다.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입법화를 추진하는 직업교육법은 중등·고등·평생 직업교육을 국가 책무로 명시하고, 생애주기별 직업능력 개발을 공공정책으로 제도화하려는 시도다. 법에는 직업교육 지원의 원칙만 담을 것이 아니라, 경력진단·직업상담, 교육비 지원, 학습성과 인증, 고용서비스 연계, 지역·산업 수요 기반의 교육과정 편성과 품질관리까지 포함돼야 한다. 그래야 직업교육이 복지의 주변부가 아니라, 빈곤을 예방하는 국가 시스템이 된다.
해외는 이미 ‘교육복지’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8년 개인의 직업적 미래를 선택할 자유에 관한 법을 통해 개인훈련계좌제로 직업교육을 지원한다. 현금이 아니라 역량을 지원해 스스로 직업을 선택하게 만드는 복지다. 우리도 직업교육법 제정과 국가 차원의 평생직업교육 지원, 그리고 지역 기반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결합된다면 노년 빈곤 문제는 구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결국 노인의 빈곤을 줄이는 길은 ‘도와주는 사회’를 넘어 ‘다시 설 수 있게 하는 사회’로 가는 것이다. 직업교육은 재취업의 문을 열고, 일자리는 소득의 기반을 만든다. 경제 성장의 성과가 노년의 빈곤이라는 마지막 과제를 해결하는 데 쓰일 때, 대한민국은 비로소 ‘복지선진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나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