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번에는 맑은 물 먹을 수 있어야
강병중 전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강병중 KNN 회장. 정대현 기자 jhyun@
낙동강 유역 주민들에게 깨끗한 수돗물을 공급하겠다며 정부가 다시 나서고 있다. 최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낙동강 유역 주민의 식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맑은 물 공급을 위한 최적 방안을 마련하고, 단계별 사업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강변여과수와 복류수를 이용하는 취수원 다변화 방안이 제시됐고, 부산 취수장을 낙동강 상류로 올리는 방법 등이 논의되고 있다.
낙동강 하류 지역 주민들에게 남강댐의 물 공급 계획은 30년 이상 늘 애만 태우게 만든 ‘희망고문’과 같은 것이었다. 남강댐의 상류에 댐을 더 만들어서라도 깨끗한 물을 부산과 창원·함안·김해·양산 등 경남의 중·동부 지역 주민들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은 역대 정부의 일관된 국정과제였고, 경남도의 도정과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서부경남 지역과 일부 환경단체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도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은 낙동강 하류 주민들의 생활과 건강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부산의 끈질긴 구애에 취수예정지 주민들과 지자체들이 점차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진주 등 서부경남에서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남강댐물의 수급 체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주목된다.
지난해 부산상의회장 취임 직후 반드시 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나타냈던 양재생 회장의 적극적인 활동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양 회장은 지난 10월 서울에서 기후부장관을 만나 부산의 맑은 물 확보와 관련한 건의서를 전달하면서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을 국정과제로 삼은 정부가 부산 물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고, 대체수원 확보 등 장기적 방안도 함께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에도 대통령에게 물 문제를 건의해서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돌이켜 보면 맑은 물 공급 문제는 1991년 페놀사태 이후 필자가 부산상의회장을 맡고 있던 1990년대 중반부터 정부와 낙동강 유역 지자체들이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시작됐다. 각종 정책과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으나, 서부경남의 반대로 인해 어느 것 하나 진척되지 못했다. 보다 못한 진주 출신의 출향인들이 재부산진주향우회와 진주·부산발전협의회 등을 만들어 민간 차원에서 소통하면서 공감대를 넓혀나갔고, 재부경남향우연합회가 힘을 합쳤다. 허남식 전 부산시장 등 서부경남 출신의 출향인들도 함께 현지 지자체장과 상의회장 등을 직접 만나 지역발전기금 지원 등 상생 방안을 협의했으나, 문제 해결에는 미치지 못했다.
최근 서부경남에서도 남강댐 방류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종전과는 다른 변화가 감지된다. 사천·남해·하동 지역에서 홍수 때 남강댐의 대량 방류가 “공동체의 생존기반을 무너뜨리는 구조적 문제”라며 국회의원과 지자체장들이 나서 피해보상과 함께 댐 운영 방식과 방류체계 개선, 국비지원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진주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 경남도의회에서 지난 7월 극한호우 당시 남강댐은 최대량을 방류했는데도 댐 바로 아래에 사는 진주시민은 물론이고 함안과 의령 군민들까지 엄청난 침수 피해를 입을 뻔했던 위기를 겨우 넘겼다며 기후대응댐 건설을 공식 제안했다.
그동안 정부와 경남도가 남강댐 수위 높이기, 합천댐의 조정지댐 활용, 함양 문정댐 건설 및 중·소규모 댐 건설 등의 방안을 내놓았으나 댐이란 말만 나와도 심한 거부감을 나타내던 서부경남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심정’으로 이런 의견이 나왔다는 것은 이상기후로 인한 홍수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증거라고 하겠다. 이런 대책을 맑은 물 공급과 직접 연관을 지을 수는 없겠으나, 좀 더 다목적인 방향으로 이뤄져서 더 많은 주민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일본의 8개 광역지자체가 결성해서 공동발전하고 있는 간사이광역연합을 모델로 부울경광역연합을 만들자고 주장하면서, 이 연합의 결성에 단초가 된 것이 3개 광역지자체가 물 문제를 양보와 타협으로 해결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낙동강 물 문제는 결국 주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강과 안전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상류와 하류 지역 주민들이 서로 이익을 주고받으며 상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