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를 위한 소식과 비만의 역설 [젊어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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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영양팀장·동남권항노화의학회 식품영양이사

‘적게 먹어야 오래 산다’는 믿음은 오래전부터 건강의 기본 원칙으로 여겨져 왔다. 실제 연구에서도 칼로리 섭취를 줄이면 대사 활동이 안정되고 만성 염증이 감소하며 세포 기능이 보호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칼로리를 20~40% 정도 줄였을 때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고 염증 물질이 감소하며, 노화를 촉진하는 유전자 신호가 억제된다는 연구도 보고됐다.

소식이 장수에 기여하는 핵심은 단순히 체중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전체의 대사 효율을 높인다는 데 있다. 과식은 혈당을 높이고 지방을 축적시키며 반복적인 염증 반응을 통해 세포 노화를 앞당긴다. 반면 소식은 이러한 대사적 부담을 줄여 몸을 더 안정된 상태로 유지하게 한다. 일본 오키나와의 ‘하라 하치부(배가 80% 찼을 때 식사를 멈추는 것)’ 식습관은 소식과 장수의 대표적 사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식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니다. 질병을 가지고 있거나 영양 상태가 좋지 않은 고령층에서는 지나친 식사 제한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바로 ‘비만 패러독스’다. 비만은 다양한 질병의 위험 요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 심혈관 질환 환자에서는 과체중 또는 경도 비만군이 정상 체중보다 생존율이 높게 나타난 연구들이 있다. 고령층에서도 지나치게 마른 경우 오히려 사망 위험이 증가하는 경향이 보고된다.

비만 패러독스는 특히 질병 부담이 크고 근육·체지방 소실 위험이 높은 환자에서 두드러진다. 심부전, 만성 신부전, 만성 폐질환같이 에너지 소모가 큰 질환에서는 일정량의 지방과 근육이 급성 악화를 견딜 수 있는 ‘예비 에너지’ 역할을 한다. 이런 환자에게 소식과 저체중은 건강하다는 신호가 아니라,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 지표가 될 수 있다. 이는 암 환자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된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항암치료 중 일정 수준의 체중과 근육량을 유지한 대장암·폐암·유방암·신장암 환자들이 더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 반면 저체중이거나 치료 과정에서 급격히 체중이 감소한 환자들은 감염 위험 증가, 치료 부작용, 회복력 저하로 인해 사망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암처럼 에너지 소모가 큰 질환에서는 체중과 영양 상태가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소식과 비만 패러독스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적용되는 상황과 대상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건강 전략이다. 소식은 건강한 사람에게 대사 부담을 낮추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장기적 전략으로 작동하는 반면, 비만 패러독스는 질병이나 노쇠 상태에서 체중 유지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단기적 보호 메커니즘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먹느냐’가 아니라 ‘지금의 건강 상태가 어떠한가’이다. 건강하고 활동량이 많은 성인에게는 소식이 이롭지만, 고령층이나 만성 질환자에게 체중 감소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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