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동백꽃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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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1948~)

흰 구름 돛단배 떠가는 박물관 뒤뜰

얼굴 없이 몸만 남은 돌부처 옆에서

참수형장 망나니 칼춤 비명 소린 듣지 못했으나

우두커니 선 동백나무 아래

붉은 피 뚝뚝 듣는 동백꽃, 그러니까

아프면 아프다 말했어야지

누구나 상처받는다는 석가 예수 농담 사이

오늘이 그 마지막이라고

묵언 중인 돌부처가 단호히 말했다

누추한 슬픔에도 무릎을 굽히지 않고

동백꽃 숲에서

피어서 여를, 땅에 떨어져 여를

울컥울컥 더운 피 동이로 게워낸 목울대로

열심(熱心)으로 피운 뜨거운 꽃

절망을 딛고 선 부활의 몸짓이란 듯

피 흘리는 투사의 구호를

눈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

아프다

시집 〈물꽃〉 (2024) 중에서

동백꽃과 동백나무는 부산시를 상징하는 꽃과 나무입니다. 추울수록 진하고 큰 꽃잎을 피우는 동백은 만개한 꽃이 송이째 떨어지는 바람에 지켜야 할 절개나 지조로 비유되곤 합니다. 삶의 무상(無常), 지는 동백처럼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나는 삶은 어떤 것일까요. 그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는 동백.

시인은 아픈데 아프다 말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투사들을 동백에서 봅니다. 피 흘리는 투사의 구호로 듣습니다. 그 어떤 힘 앞에서도 결코 무릎을 굽히지 않겠다는 의지를 외칩니다. 혹한을 견디며 싹을 틔우고 있을 꽃의 희망, 꿀벌과 나비가 찾아오는 그 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닐런지요.

동박새와 직박구리가 찾아와 세상이 결코 추운 곳만은 아니란 걸 노래해주지 않을런지요.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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