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부산항 위기 극복, '영토' 확장이 핵심
이성우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선임연구원
최근 부산항의 물동량에 경고등이 켜졌다.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이 심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이 블록화·파편화되고, 2월 이후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이 작용하였다. 이에 따라 올해 부산항의 물동량은 등락을 반복하며 소폭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6월부터 감소세로 전환되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심화는 중국발 미국향 물동량 감소로 이어졌고, 글로벌 선사들이 얼라이언스 기항 항만에서 부산항을 제외할 경우, 얼라이언스 선사 간 연결 물동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현재 부산항은 미국향 환적 물동량 감소 가능성과, 제미나이 얼라이언스 협력 대상에서 부산항을 주로 이용하는 HMM 등 디 얼라이언스 선사들이 제외되면서 물동량 감소라는 이중 리스크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일시적인 현상이든 구조적인 변화든, 이제는 능동적인 전략을 통해 부산항의 물동량 안정화와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도모해야 할 시점이다.
미중 갈등 속 물동량에 경고등 켜져
싱가포르, 항만공사 주도로 위기 극복
해외 거점 확보 사례 벤치마킹 시급
부산항의 위기는 단순한 항만 운영의 문제를 넘어, 우리나라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첫째, 대한민국은 2023년 기준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약 88%에 달하며, 이는 미국(24.9%)이나 일본(45.2%) 등 선진국 대비 2~3배 높은 수준으로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 둘째, 우리나라 수출액의 약 70.3%가 전자 부품, 화학 소재 등 중간재에 집중되어 있어 글로벌 가치사슬(GVC) 내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외 무역의 99% 이상이 해상운송에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리스크에 극도로 취약하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수출입의 약 80%가 경유하는 대만해협이 봉쇄될 경우, 대만(GDP 43% 하락)에 이어 가장 큰 경제적 피해(GDP 23.3% 하락)를 입는 것으로 분석된다. 해상 물류망의 안정성 확보는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내 제조기업들은 미중 갈등에 따라 북미(미국, 멕시코), 동남아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고 있으며, 분산된 생산 거점과 해외 물류 거점 확보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혁신에 성공한 싱가포르항의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초반, 세계 최대 선사인 머스크가 과도한 비용과 혼잡 문제를 이유로 거점을 말레이시아의 탄중 펠레파스항(PTP)으로 이전하면서, 싱가포르항은 약 170만 TEU의 물량이 단숨에 이탈하는 위기를 겪었다. 당시 싱가포르항만공사(PSA)는 이 위기를 발판 삼아 단순한 항만 운영자를 넘어 ‘글로벌 항만 투자자이자 운영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PSA는 2024년 기준 45개국 77개 항만 터미널을 운영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싱가포르항과의 환적 연결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PSA와 같은 국영 물류기업을 통해 싱가포르가 서비스 수출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공공 부문이 주도하는 글로벌 물류 거점 확보가 국가 경쟁력에 얼마나 핵심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실제로 PSA의 매출액은 우리나라 최대 항만공사인 부산항만공사(BPA) 대비 20배 이상, 종업원 수는 200배 이상으로 싱가포르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만약 BPA가 이 정도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부산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해양수도 부산의 성장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한 지역 인재 유출을 방지하고 전국 및 전 세계의 우수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기능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매우 취약하다. 국적 10대 물류기업의 해외 물류센터 중 자영 비율은 5.8%에 불과하며, 글로벌 항만 터미널 운영도 4개소에 불과하여 글로벌 네트워크가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국가적 공급망 리스크에 대비하고 궁극적으로 부산항의 물동량 창출에 기여하기 위해, BPA를 포함한 4대 항만공사가 중심이 되어 글로벌 물류 거점을 선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이는 항만공사법상 외국 항만 건설·관리·운영 사업 범위 내에서 법적으로 추진이 가능하며, 해외 진출 리스크가 큰 민간 기업들을 대신하여 ‘앵커 투자자’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다.
2010년 이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순위가 급락했던 대만의 카오슝항 사례 역시 대만국영항만공사(TIPC)가 투자 자회사를 통해 해외 물류 거점을 확충하여 물동량 창출과 국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고 있다. 해외 거점 확보는 궁극적으로 부산항 물동량 확충과 국가 공급망 안정화에 직접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미래 국가 공급망 안보를 위한 전략적 투자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지금이야말로 부산항을 포함한 대한민국 항만의 미래를 결정지을 전략적 투자 실행에 나설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