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국감’ CEO 빈자리, 당국 수장 ‘갭투기 논란’으로 채웠다
금융위·금감원 종합감사 마무리
CEO 대신 이억원·이찬진 부각
정책 검증 대신 ‘갭투기’ 논란만
‘쇼윈도식 청문회’ 전락 비판도
이억원(오른쪽)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찬진(왼쪽)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사실상 ‘맹탕’으로 막을 내렸다. 금융지주, 은행, 증권, 보험사들의 주요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증인과 참고인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에 대한 금융정책과 감독 기조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이억원 금융위원회 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 등 금융당국의 새로운 두 수장의 ‘갭투기’ 논란이 집중 타깃이 돼 화제를 모았다.
■금융권 CEO들 ‘역대급 빈자리’
금융권에 대한 국감은 지난달 27일 금융위와 금감원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지속된 국감 기간 내내 금융권 CEO의 얼굴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무위 국감 출석자 가운데 민간 금융사 CEO는 단 5명에 불과했다. 홈플러스 사태 논란의 중심에 선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과 김광일·윤종하 부회장, 해킹 사태로 홍역을 겪은 조좌진 롯데카드 대표, 김윤석 신협중앙회장 등이다. 당초 증인으로 채택됐던 오경석 두나무(업비트) 대표와 김인 새마을금고중앙회장은 국감 직전 채택이 철회됐다.
특히 정무위 국감 증인 및 참고인에는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와 은행의 회장과 행장들이 모두 채택되지 않았다. 오히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에서 양종희 KB금융 회장,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 박상진 산업은행 회장, 방성빈 부산은행장 등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마저도 소환이 철회되며 모두 출석을 피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망신주기 식 출석이 잦았던 만큼 긍정적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국회 본연의 감시 기능인 국감 취지에 맞는지 의문도 든다”고 지적했다.
■정책 검증은 실패, ‘갭투기 논란’만 부각
주요 금융사 CEO가 사라지면서 대신 자리를 채운 것은 금융당국의 새로운 수장들이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치러진 첫 금융당국 국감은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데뷔전’인 만큼 관심이 집중됐다. 특히 두 사람의 부동산 논란이 국감장을 달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서울 강남 개포주공 아파트를 전세를 끼고 매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재건축을 앞둔 노후 아파트에 갭투자를 해 수억 원 차익을 남기고 또다시 전세를 끼고 새로 매입해 재건축이 완료된 후 실거주 중이다. 해당 아파트의 현재 시세는 40억~50억 원에 달한다. 이를 두고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강조하는 금융당국 수장이 스스로 갭투자를 했다는 것은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행태”라고 비판했다. 논란에 대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개인에게 질의하는 게 아니라 공직자에 질의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제가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의 경우는 더 큰 논란을 불러왔다. 그가 과거 자신의 발언과 배치되는 ‘다주택자’인 점을 두고 논란이 되자 매도가 아닌 자식에게 증여한다는 입장을 밝혀 ‘아빠 찬스’ 논란을 키웠고, 결국 국감에서 “주택 1채를 부동산에 내놓았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 원장은 참여연대 시절 고위공직자 임용 시에 다주택자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후 직전 실거래가보다 4억 원 높게 내놨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은 국감에서 “이 원장이 내놓은 22억 원은 한 달 전 실거래가인 18억 원보다 4억 원 높다”며 “한 달 만에 4억 원이 오르다니 이재명 정부 10·15 대책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무기력한 국감…반복 우려도
당초 금융권에서는 올해 금융사 해킹 사건과 홈플러스 사태, 상호금융권 부실 대출 문제 등 현안이 산적했던 만큼 국감에서 집중 조명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논의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금융당국 수장들의 부동산 논란이 내내 화제가 되며 금융소비자 보호나 금융사 건전성 검증 등이 소홀해졌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국감이 ‘쇼윈도 식 청문회’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처럼 CEO들이 줄줄이 빠진 일 역시 전례가 없다. 금융권 관계자는 “증인 채택이 돼도 번번이 철회되며 금융 현안이 국감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며 “올해 국감은 금융권 현안이 아닌 부동산 정책과 당국 수장들의 논란을 키우는 자리가 됐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