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공해·심해저의 새로운 거버넌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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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열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법·정책연구소 책임연구원

공유 해양 보호 BBNJ 협정 내년 1월 발효
한국은 동아시아 첫 비준 선도 역할 국가
이익 공유하고 개도국에 역량 강화 지원
새 질서에 해양강국 책임·리더십 발휘를

전 세계 해양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공해와 심해저에 대한 새로운 법질서가 시작된다.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 협약에 따른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 및 지속 가능한 이용에 관한 협정(이하 BBNJ 협정)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지난 9월 19일 모로코와 시에라리온의 비준서 기탁으로 60개국 비준 조건이 충족됨에 따라 BBNJ 협정은 2026년 1월 17일부터 발효된다. 이는 단순한 하나의 국제 협약 발효가 아니다. 약 20년간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자, 인류가 공유하는 바다를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국제법 체계가 마련되는 역사적 사건이다.

대한민국은 이러한 역사적 여정에서 선도적 역할을 수행해 왔다. 올해 3월 19일, 우리나라는 전 세계 21번째, 동아시아 최초로 BBNJ 협정 비준서를 기탁했다. 중국이 아직 비준 절차를 진행 중이고 일본은 서명조차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신속한 비준은 해양 거버넌스를 선도하는 국가로서의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다.

BBNJ 협정은 네 가지 핵심 의제를 통해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의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단순한 규제가 아닌, 소통과 국제 협력, 그리고 과학 기반 의사 결정을 통한 해양환경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첫째, 공해 및 심해저의 해양 유전 자원과 디지털 서열 정보에 대한 이익 공유 체계를 수립한다. 통고 제도를 통해 정보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금전적·비금전적 이익 공유를 통해 개발도상국도 해양 유전 자원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해양 바이오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투명하게 공유되는 해양 유전 자원 정보를 적극 활용하고, 우리의 선진 연구 역량을 통해 혁신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익 공유 체계에 기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공해와 심해저에 해양 보호 구역과 같은 구역 기반 관리 수단을 설정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 당사국 총회는 과학기술 기구의 권고와 폭넓은 이해관계자 의견을 바탕으로 투명한 절차를 통해 보호 구역을 지정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 공해의 약 1%만이 보호되고 있는 상황에서, 2030년까지 해양의 30%를 보호 구역으로 지정하려는 국제사회의 목표 달성을 위해 BBNJ 협정은 필수불가결한 도구다.

셋째, 공해상 모든 활동에 대해 환경영향평가 수행 의무를 명시한다. 이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통해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예방적 접근 방법이다. 산업 활동에 대한 제약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오히려 이는 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철저한 환경영향평가와 이에 기반한 기술 개발은 국제 표준을 선도하고 장기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넷째, 개발도상국이 협정을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역량 강화와 해양 기술 이전을 의무화한다. 이는 선진국과 개도국 간 협력을 통해 전 지구적 해양 보호 체계를 공고히 하려는 노력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 수준의 해양 연구 인프라와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도국에 대한 역량 강화 지원은 단순한 의무 이행을 넘어, 해양 거버넌스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글로벌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전략적 기회가 될 것이다.

국가 관할권 이원 지역 해양생물 다양성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의 목적 달성은 과학적 기반 위에서 가능하다. BBNJ 협정 준수와 이행을 위해 해양 유전 자원 조사·채집 역량, 환경영향평가 수행 능력, 해양생물 다양성 연구 기반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특히 대양 조사 및 관측 기술, 해양생물 다양성 정보 관리 시스템 구축은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분야다. 원양어업, 해운업, 해양 바이오산업 등 관련 산업계와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도 필요하다. BBNJ 협정을 제약이 아닌 새로운 기회로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선진적인 해양 연구 역량, 세계적 수준의 조선·해운산업, 그리고 성장하는 해양 바이오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BBNJ 협정의 성공적 이행을 통해 해양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새로운 국제 규범의 의무와 규제를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법적 기반을 마련하고, 과학기술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며, 산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보전과 지속 가능한 이용 모델을 구축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해양 질서 시대에 선도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리더십에 거는 기대가 크다. 대한민국이 이 역사적 여정의 선두에 서서, 해양강국으로서의 책임과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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