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나노 바나나 그리고 캄보디아
                    인터넷 스마트폰 탄생은 예고편
AI 사용자·성능 증가 속도 ‘압도적’
불경기 AI 등장에 고립된 청년들
부모 세대조차 방향 잃고 허우적
캄보디아 사태 ‘청년 SOS 신호탄’
정부 차원 치밀한 대책 서둘러야
                
			두 달 전만 해도 ‘나노 바나나(Nano Banana)’라는 이름은 세상에 없었다. 무슨 새로 나온 바나나 품종인가 싶겠지만, 실은 구글의 AI 이미지 서비스 코드명이다. 단순히 이미지를 생성하는 차원이 아니다. 명령만 하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자유롭게 편집해 준다. 배경은 물론이고 강아지를 고양이로, 남자를 여자로 뚝딱 바꾼다. 옷도 갈아 입히고 헤어스타일도 바꿔주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고 나면 새로운 AI 서비스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뭐가 뭔지 헷갈려도 AI를 잘만 활용하면 혼자서도 거뜬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편리한 세상이 펼쳐질 것 같다.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전자상거래’ 수업에서 “앞으로 개인이든 기업이든 모두가 인터넷으로 거래하고, 모르는 것을 검색하면 알려주는 세상이 곧 온다”는 교수님 말씀이 그렇게 빨리 현실이 될 줄 몰랐다. 전화선 모뎀을 넘어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월드 와이드 웹이라는 화려한 단어가 당연한 일이 됐을 때가 밀레니엄 2000년을 넘어서였다.
인터넷 세상에 적응이 됐다 싶으니, 2007년 별안간 ‘아이폰’이 나왔다. 첫 대면은 미국 출장 때였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미국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게 모든 걸 빨아들일 겁니다. 세상을 바꿀 겁니다.” 충격적이게도, 폰 하나로 사진 촬영은 물론 일기 예보와 음악, 인터넷까지 모든 게 가능했다.
스마트폰이 생활 필수품이 되자, 다시 AI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인터넷, 스마트폰 정도겠거니 하던 것이 자세를 바로잡게 됐다. 이용자와 성능의 증가 속도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이용자가 세계적으로 늘어나는 데 최소 10년 이상이 필요했다면, 2022년 11월 30일 챗GPT가 등장한 이후 불과 3년도 되지 않아 전 세계 8억 명 이상이 다양한 AI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이 됐다.
이러하니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 너무나 힘든 현실과 미래가 이어질 것 같다. AI 앞에서 두 눈 부릅뜨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인기가 높았다. 이제는 ‘컴공’이라 불리는 컴퓨터공학과 지원자부터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다. AI가 웬만한 코딩을 모두 해치워 버리는 탓이다. AI 관련 최상위 인재 수요만 여전하다.
기업들은 신입사원 채용을 잘 하지 않는다. 스타트업마저 경력자 채용이 70%에 달할 정도로 소수 정예를 선호한다. 시니어 경력자 몇몇이 있으면 AI가 신입사원 역할을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지난 추석 연휴에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당장 경영 실적만 생각해 신입을 키우지 않으니 세월이 지나 경력자들이 퇴직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국가데이터처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청년 고용률은 45.1%에 불과했다. 17개월 연속 하락세로, 경력직 위주 채용이 고착되었음을 의미한다.
불과 2~3년 사이에 AI와 데이터센터가 세계 주가에다 일자리까지 좌지우지하게 됐으니, 이를 지켜보는 부모들로서는 난감하기만 하다. 과거와 달리 부모 세대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들어 자녀에게 어떤 공부를 하고, 어느 길로 나아가라고 조언할지 막막하다.
더구나 지역에 사는 부모들은 최근 불거진 캄보디아 사태를 보며 가슴이 더욱 미어진다. 피해자 다수가 지역 청년들이어서다. 캄보디아 사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최악의 구직난 속에 그들을 단순히 돈을 쫓아 스스로 찾아간 범죄자들로 치부하기에 힘든 지점이 많다. 수도권 일극화로 저임금에도 불나방처럼 서울로 몰려드는 청년들,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지역의 청년들, 살기가 팍팍해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한 청년들…. 지역 소멸이 국가 소멸을 부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모두 지역균형 발전에 실패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다.
‘AI 임팩트’는 이번 캄보디아 사태보다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를 부를 것이 분명하다. 서울로 가도, 고향에 돌아와도 일자리가 없다면 청년들에게 남는 건 절망 뿐이다. 청년들을 그저 ‘시장의 원리’에 내맡겨서 안 되는 이유다.
기술을 발전시키고 주식으로 돈을 버는 일도, 중국의 약진을 따라잡는 일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지금 가장 확실한 건 지역균형 발전을 방치하면 대한민국 청년의 삶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청년들의 삶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최우선이다. 감당 못할 쓰나미 속에 고립된 청년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줄 실질적인 방안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여야를 떠나, 정부와 정치권이 당장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나서기에도 이미 한참 늦은 국가 최대의 난제다.
박세익 디지털영상센터장 run@busan.com
박세익 기자 ru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