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초고령화 사회, 돌봄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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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재가 서비스·요양병원 등 따로 존재
선진국 '집으로 찾아가는 복지' 중점
모든 세대 공존하는 환경 조성해야

주말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간다. 동생과 함께 거주하는 모친에게는 요양보호사가 주 5일 방문한다. 요양보호사도 이미 60세가 넘었다. 노인이 노인을 케어하는 ‘노노케어’는 이미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체계적이지 않다. 90세가 넘은 모친을 볼 때마다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이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는 존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 만 65세 이상이 20%를 넘겨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했다. 20년 뒤인 2045년에는 37%까지 높아져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고 하니 ‘노인과 바다’인 부산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인의 나라’인 대한민국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인구가 급격히 팽창했던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으로 편입되는 것과 인구 소멸이 함께 가져온 결과다. 지금은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면 20년 후에는 세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라는 것이다. 미국 노인 복지 전문가 데이비드 버넷(버지니아커먼웰스대) 교수는 한국을 두고 “급속한 인구·사회·경제 변화를 겪는 국가의 전형”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늙음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준비해야 할 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12월 기준, 전국 3892개 노인요양시설에 입소한 어르신은 41만 2000여 명에 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2013년)에서는 요양 시설 입소 노인의 68%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답했다. 그러니까 이 중 절반 이상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가족의 결정으로 입소했다는 것이다. 가족의 돌봄 부담, 주거 불안, 경제적 여건 부족 등으로 요양 시설에 입소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노인 돌봄을 핑계로 그들의 삶을 시설 속에 가두고 관리 대상으로 여겨왔다. 누구도 자신의 마지막을 시설에서 맞이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요양원이 아니라, 찾아가는 돌봄을 위한 지역사회 시스템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는 이런 현실을 제대로 받쳐주지 못한다. 실버타운은 지나치게 비싸 중산층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공공임대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무엇보다 돌봄이 필요한 순간마다 집을 떠나야 하는 구조는 노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재가 서비스, 요양병원, 요양 시설이 각각 따로 존재해 연속성이 없으니, 노인의 삶이 시설과 제도의 틈새에서 조각나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이 나의 부모일 수도 있고, 미래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탈시설화를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고 ‘집으로 찾아가는 복지’를 시작했다. 싱가포르의 ‘캄퐁 애드미럴티’는 공공임대주택 위에 주거, 의료, 상업, 커뮤니티 공간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복합단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병원이 있고, 이웃과 함께하는 정원이 있으며,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도서관이 곁에 있다. 노년의 이동 불편을 건축이 대신 설계해 준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휴마니타스’는 더 실험적이다. 대학생이 요양 시설에 무료로 거주하며 어르신과 생활을 나눈다. 세대 간의 교류를 건축이 의도적으로 설계한 셈이다. 일본은 ‘지역포괄케어시스템’을 통해 의료, 돌봄, 주거를 지역 단위에서 엮어내고 있고, 덴마크는 오래전부터 집에서 가능한 한 오래 살 수 있도록 재가 중심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 건축은 여기서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제도와 맞물려 돌아가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한국 사회에도 무엇보다 연속성 있는 주거가 필요하다. 노인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는 가정과 청년, 은퇴 세대가 섞여 살아가는 ‘복합 공간’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집과 작은 도서관, 공유 부엌과 정원을 함께 두어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 다섯 명이나 열 명이 함께 사는 소규모 그룹홈은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 작은 가족처럼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이웃 공동체는 고립을 막아준다.

이런 변화는 건축가의 설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인 친화적인 집에는 세제나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대학과 연계한 은퇴자 주거 단지를 시범적으로 지원하며, 기존 아파트를 ‘에이징 레디(노후에도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을 미리 준비하는 것)’로 바꿀 수 있는 리모델링 표준을 제정하는 일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나아가 도시는 ‘돌봄의 인프라’를 물리적 시설만이 아니라 생활권 단위의 사회적 관계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결국 노년의 존엄은 물리적 공간과 제도적 장치, 현실적인 정책과 실행이 맞물려야 지켜질 수 있다.

초고령화 사회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초고령화 사회의 도시와 건축은 모든 세대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우리가 어떤 건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노년은 고립과 불안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존엄과 관계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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