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철의 사리 분별] 트럼프주의 10년,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논설위원
2016년 첫 당선 세계사 주역 등장
거침 없는 미국 우선주의·혐오·차별
최근 일방 상호관세 지구촌 대혼란
이제는 이단 아닌 뉴노멀로 정착
포퓰리즘식 진영 논리에 증오 만연
집단 퇴행 치유할 통합 리더십 절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째로 접어들었다. 2016년 그가 처음 당선된 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당시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면서 이민자와 성소수자 혐오는 물론 인종차별 발언까지 서슴지 않던 그의 모습은 지구촌에 큰 충격을 안겼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1월 재선 임기를 시작한 뒤에는 충격을 넘어 혼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기존 질서를 아예 무시한 일방적인 상호 관세 부과 등으로 인해 전 세계는 그야말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미 우리가 예전에 알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가(MAGA)’ 구호에 밀려 기존 국제사회의 중대한 원칙인 다자주의에 입각한 상호주의와 자유무역체제 등은 변변한 저항조차 못한 채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는 중이다.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도 일상이 된 ‘퇴행의 역습’을 언제까지 버텨낼지 장담할 수 없는 형국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을 주축으로 한 신냉전 체제도 한층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힘에 의한 평화’ 논리가 다시 힘을 얻으면서 1991년 구 소련 연방 해체로 찾아왔던 짧은 평화의 시기가 사실상 끝났다는 탄식도 이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최근 미국에 35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하고도 현지에서 일하던 한국 노동자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무분별하게 구금되는 장면을 지켜봐야만 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10년 전 다소 기이하게까지 느껴졌던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말투와 행동, 반지성적 논리가 이젠 뉴노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트럼프주의의 확산이다. 트럼프주의의 골자는 우익 포퓰리즘, 미국 내셔널리즘, 반세계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주의 10년’의 영향으로 극우 성향 정당들이 전 세계적으로 한층 강력한 영향력을 획득했다. 유럽의 경우 헝가리 민족주의 성향 피데스당, 프랑스 극우 국민연합, 오스트리아의 자유당, 체코 긍정당, 네덜란드 자유당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를 차용해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까지 내걸었다. 정치 이념도 트럼프 대통령과 판박이다. 이들은 EU의 친환경 노선을 비판하고 공식 행정 문서에 사용하는 성별을 남성과 여성만 인정하기로 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도 적극 호응한다. 특히 그들은 트럼프주의가 더 이상 이단이 아니라 주류라고 선언한다.
가장 큰 문제는 트럼프주의 확산 이면에 강력한 포퓰리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선거 시스템의 한계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포퓰리즘은 트럼프주의의 주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은 보수와 진보, 극우와 극좌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다. 선거 전략뿐만 아니라 정당 운영 논리, 국정 운영 방향도 포퓰리즘적 손익계산서를 토대로 수립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도 경제적 불평등 심화와 정치적 양극화라는 환경 속에서 미국 사회 불안정성이 증대된 데 따른 유권자들의 표심 변화를 정확히 읽고 공략한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심각한 후유증을 유발한다. 포퓰리즘은 편가르기를 통해 힘을 얻고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이다. 집권과 정권 재창출에 매몰된 정치 지도자들은 대중들을 상대로 상대 진영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조장하는 데 골몰한다. 이 과정에 가장 우려되는 점은 포퓰리즘식 선동이 상대 진영에 대한 지지층의 증오를 유발한다는 것이다. 유권자가 깨어있지 못할 경우 정치가 부추긴 증오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한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트럼프주의 지지자인 미국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암살 사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용의자인 타일러 로빈슨은 “그의 증오에 질렸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결국 임계점을 넘어 참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지금도 진영 논리식 분노 표출과 복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등 이 사건의 파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더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가 32세, 용의자 22세로 모두 미래를 이끌 청년층이라는 점이다.
트럼프주의 10년, 계속 이대로 흘러가도 괜찮은 것인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은 우리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세대와 계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목격되는 극심한 분열과 갈등은 우리 사회의 공동체적 연대에 깊은 상처를 내고 있다. 지적체계에 기반한 평화와 평등, 인류애, 이타심, 다양성 등 그동안 힘들게 구축한 보편적 가치들도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는 모든 점에서 옳다(Trump was right about everything)’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서로 자신이 전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인류가 트럼프주의와 포퓰리즘 부작용으로 인한 집단 퇴행을 극복하는 데는 앞으로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소통과 화합으로 공존의 길을 찾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시절이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