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 2025] 자파르 파나히 감독 “누구도 영화 만들기 못 막아… 언제나 방법을 찾을 것”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기자회견
“영화를 만드는 순간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끼지만, 영화를 만들며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된 학살에 대해 떠오를 땐 괴롭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저항의 메시지가 담긴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18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감독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그 영화는 사회적인 영화”라며 “그런 점에서 나는 사회적인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1960년 이란에서 태어난 파나히 감독은 1995년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으로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이란 영화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작품 활동 초기부터 줄곧 사회성 짙은 영화로 이란 사회의 부조리와 억압적인 현실을 고발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이란 정부로부터 가택 연금과 영화 제작 금지 처분 등 영화인으로서 탄압을 받았지만, 실험적인 기법으로 영화 제작을 시도하는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파나히 감독은 “정부로부터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뒤에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섰다”라며 “덕분에 나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집중하는 과정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누구도 영화 만들기를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영화인들은 언제나 방법을 찾아서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나도 방법을 찾았다”고 전했다.
파나히 감독은 앞서 2002년 ‘써클’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2015년 ‘택시’로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그저 사고였을 뿐’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아시아 감독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석권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서 소개된 뒤 다음 달 1일 국내에서 전 세계 극장 가운데 최초로 개봉한다.
파나히 감독과 부산, 부산국제영화제의 인연은 30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1996년 제1회 BIFF에 참석했던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그동안 이란 정부의 출국 금지 조치 탓에 2003년 이후 22년 만에 부산과 BIFF를 다시 찾았다.
파나히 감독은 지난 1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BIFF 출범의 주역’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을 추억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파나히 감독은 “생전 김지석 부집행위원장은 이란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며 “2017년 이란에 갇혀 있는 자신을 찾아와 “한국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는데,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으로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처음 BIFF에 참가했을 때 부산은 아름답고 활발한 도시였고 아시아 최고의 영화 도시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확신했다”며 “BIFF는 관객과 영화인들이 가깝게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점에서 최고의 영화제”라고 덧붙였다.
파나히 감독은 영화계를 이끌 젊은 영화인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관객이 관심 있는 이슈를 추구하는 영화, 감독의 문제의식에 대해 관객이 관심을 두도록 이끄는 영화 중 어떤 작품을 만들 것인지 택해야 한다”며 “두 유형 모두 영화계에 필요하지만, 영화인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먼저 찾아내야 한다”고 전했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