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그린에너지 인프라로 여는 친환경 스마트 해양 도시
서용철 부경대 토목공학과 교수
부산항을 매일 오가는 수천 척의 선박과 항만을 가득 메운 컨테이너는 부산 경제의 활력 넘치는 심장이다. 그러나 이 심장이 내뿜는 연기는 여전히 석유와 중유에 의존하던 과거의 흔적을 담고 있다. 기록적인 폭염과 폭우, 예측할 수 없는 해수면 상승이 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일상이 된 지금, 바다는 더이상 화석 연료의 배출물을 무한정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이 거대한 항만의 에너지가 한순간에 친환경으로 바뀐다면 부산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항만과 도시를 아우르는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있다.
그린에너지 인프라는 석유나 중유 같은 화석 연료 대신 수소, 암모니아, 메탄올, 나아가 태양광이나 풍력처럼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생산부터 저장, 운송, 공급까지 아우르는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이다. 이는 단순히 선박의 연료 탱크를 바꾸는 것을 넘어 항만과 도시의 에너지 체계를 친환경적으로 전환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미래 경제를 준비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다. 부산이 이 길을 선제적으로 나아간다면, 미래 친환경 선박 연료 공급 역량을 갖춘 북극항로의 거점 항구로서 세계 해양산업을 선도하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화석 연료 대신 친환경 전환 시대
탄소 배출 제로 항만·도시 만들어야
북극항로 거점 해양산업 선도 필수
수소 전환·재생에너지 100% 자립
장기 전략·전환 로드맵 구체화해야
도시 패러다임 전환 부산 미래 좌우
2023년 7월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 국제해운 탄소배출을 2008년 대비 100% 감축하는 ‘넷제로(Net-Zero)’로 목표를 확정했고, 2027년부터는 연료 표준제와 온실가스 가격 부과 제도를 시행한다. 유럽연합(EU) 역시 2024년부터 국제해운을 탄소배출권 거래제(ETS)에 포함시켰다. 수출입 물동량의 99.7%를 해운에 의존하는 한국에 이러한 변화는 경제 전반에 걸친 중대한 도전이자 기회이며, 특히 세계 2위 환적 항만인 부산항은 이러한 전환의 최전선에 서 있다.
세계 주요 항만들은 이미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은 유럽 최대의 그린수소 허브를 구축하며 미래 에너지 전환을 주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세계 최초로 메탄올 벙커링을 상업화하고 2030년까지 다중 연료 인프라를 완비할 계획을 발표하며 이 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싱가포르는 친환경 연료 선박에 항만 사용료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국제적 협력을 위한 ‘녹색 해운 회랑(Green Corridors)’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하지만 부산항은 액화천연가스(LNG)와 메탄올 벙커링 실증 및 상용화 성공의 긍정적 진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인 무탄소 연료 시스템은 아직 계획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는 몇 가지 복합적인 원인에서 기인한다. 무엇보다 부산항의 탄소중립 종합계획 수립에도 불구하고 관련 정책들이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파편화되고, 정책 주체들 간 이해관계가 분절화되어 장기적인 통합 전략이 부재하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2050년까지 약 71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선박 전환 비용과 높은 무탄소 연료 가격은 민간 투자를 가로막는 현실적인 장벽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차세대 연료에 대한 안전성 확보 문제, 기술적 불확실성, 그리고 전문 인력 부족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여전히 남아있다.
부산이 나아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항만과 도시를 하나로 묶는 ‘부산형 그린포트·스마트시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LNG를 시작으로 메탄올, 암모니아, 수소로 이어지는 단계적 에너지 전환 로드맵을 구체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항과 영도 재개발 지역을 활용한 수소·암모니아 벙커링 실증 클러스터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동시에 글로벌 선사와 에너지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컨소시엄 모델을 통해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한다.
또한, 항만 장비의 수소 전환 및 재생에너지 자립률 100% 달성을 목표로 하는 ‘탄소중립 항만’ 전략은 도시의 장기 계획과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한다. 최근 한미 관세 협상에서 합의된 1000억 달러 규모의 LNG 등 대규모 에너지 제품 구매는 부산의 그린에너지 인프라 구축에도 힘을 보탤 것이다.
부산은 바다의 무한한 잠재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 수 있는 도시다. 그린에너지 인프라는 단순한 시설물이 아니라 부산의 산업, 도시, 에너지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하는 핵심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이 거대한 전환의 흐름 속에서 결정적 순간 위에 서 있다. 강력한 의지와 과감한 투자, 그리고 시민과 기업의 협력이 뒷받침된다면 부산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친환경 스마트 해양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그 출발은 지금, 바다 위에 새로운 에너지의 길을 놓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