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HMM 민영화의 원칙
포스코, HMM 산은 지분 인수 검토
한진해운 파산 사태 곱씹어볼 필요
단순한 금융·기업 논리에 우선하는
원양해운 공공성 지킬 방안 찾아야
길이 400m 폭 61m 높이 33.2m. 2020년 4월 부산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HMM 알헤시라스호’의 위용은 대단했다. 20피트 컨테이너를 무려 2만 4000개나 한 번에 나를 수 있는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이었다. HMM(옛 현대상선)은 그 뒤로 3개월간 같은 크기의 배 11척을 인도받아 유럽 노선에 투입했다. 주인 잃은 현대상선을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해진공)가 넘겨받아 공적 자금을 과감히 쏟아부은 덕분에 현재 HMM은 세계 8위 수준의 수송 능력(선복량)을 갖추게 됐다.
현재 산은과 해진공이 보유한 HMM 지분 비율은 각각 36.02%와 35.67%다. 산은의 자기자본(BIS)비율은 13.9%로 금융당국 권고치 13%를 겨우 넘긴 상태다. HMM 지분이 자기자본의 15%를 넘기면서 위험가중치 1250%를 적용받게 돼, HMM 주가가 오르면 BIS비율이 낮아지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7월 HMM 지분에 대한 위험가중치 적용을 3년 미뤄줘 매각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준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체 산업군 지원을 맡는 산은의 자금 공급 여력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더 미룰 수 없기에 신임 박상진 산은 회장이 지난 9일 “HMM 민영화에 속도를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HMM 민영화 논의에 앞서 한진해운 파산의 교훈을 다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소유 기업의 의지 부족, 정부의 해운업에 대한 몰이해가 겹치며 세계 7위 선복량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고 있던 한진해운을 공중분해시키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당시 채권단은 한진그룹에 긴급자금 7000억 원을 요구했지만 한진은 경영권과 함께 4000억 원을 내놓겠다는 입장으로 평행선을 달리다 법정관리와 파산에 이르고 말았다. 불과 3000억 원 차이였다. 2017년 선복량 기준 세계 13위에 불과하던 현대상선을 오늘날의 세계 8위 HMM으로 키우는 데 투입된 공적자금은 약 6조 8000억 원. 호미로 막을 일을 포클레인으로 겨우 막은 셈 아닌가.
돈 문제가 다가 아니다. 한진이 40년간 확보한 선박과 부두 지분 같은 유형의 자산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구축한 네트워크, 업계 전문 지식을 내재화 한 고급 인력들이 모두 산산히 흩어져버렸다. 무형의 자산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당장 확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재 HMM은 미주와 유럽, 아시아 노선을 동시에 운영하는 국내 유일 글로벌 원양 선사다. 민영화에 단순한 금융·기업 논리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국내 수출입의 최전선을 담당하는 필수 기간산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공기업은 아니지만 실제 원양 선사가 맡는 공공적 성격의 업무에 맞게 소유 구조에서의 공공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HMM 최대 주주인 산은 지분을 특정 기업이 독점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최근 포스코그룹의 HMM 인수 검토에 대해 해운업계가 강력 반발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주력산업이 위험해지면 해운업을 먼저 희생시킬 가능성이 있고, 대형 화주이기도 한 기업이 자사 물량 위주로 해운업을 영위하면 기존 해운 생태계가 흐트러진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단순한 해운 선사 한 곳 민영화 하는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적선사이자 기관으로서, 대한민국 해운산업이라는 측면에서의 지배구조 문제를 동시에 봐야 한다”며 HMM 민영화를 신중하게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다른 인터뷰에서 전 장관은 해운산업이 해양안보와 밀접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산은의 HMM 지분을 여수·광양부터 부산·울산·포항에 이르는 동남권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공계가 나눠 갖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이를테면 ‘지역성 강화’ 방안이다.
산은이 소유한 HMM 지분의 가치를 HMM이 지난 8월 실시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2만 6200원으로 환산하면 약 10조 원에 이른다. 지자체와 상공계가 전체를 마련하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전 장관 아이디어에 생각을 보태보면 이렇다. HMM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해진공이 지분을 더 늘리는 것이다. 해진공이 굳건히 HMM 대주주 역할을 맡아 원양 해운의 공공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원양 선사와 연결돼 아시아 역내 해운을 책임지는 근해 국적선사들이 지분 참여를 한다면 HMM의 해운 전문성과 연결성도 동시에 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화주기업들의 소액 지분 참여도 충분히 고려할 만하다.
부산으로 이전할 HMM의 지역성과 전문성, 공공성, 산은의 자본 건전성 제고를 모두 꾀할 수 있는 방안,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여러 분야 관계자들의 머리를 맞대볼 필요가 있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jiny@busan.com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