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의선의 로봇 사랑
4년 전 로봇회사 인수… 실전 투입 나서
휴먼 로봇 '아틀라스' 생산라인에 활용
"미국에 로봇 3만 대 생산공장 건설"
생산성 향상, 노조 대항마 역할 기대
2022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의 IT·가전 전시회 CES에서 화제 가운데 하나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사족 보행 로봇 ‘스팟’과 함께 무대에 오른 장면이었다. 당시 정 회장은 “매일 휴대전화를 들고 다니는 것처럼 언젠가는 사람들이 스팟을 데리고 다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2년후인 지난해 말 스팟이 미국 비밀경호국 요원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의 자택 주변을 순찰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정 회장의 예고가 현실이 된 것이다.
이미 싱가포르 혁신센터 HMGICS에는 로봇개 품질 검사원으로 스팟이 투입돼 있다. 국내에선 기아차 광명 공장에서 로봇개가 활동하고 있다.
올 연말에는 현대차의 글로벌 생산라인에 본격 투입된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미국 조지아주에 있는 신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조립라인에 시범적으로 넣기로 한 것이다. HMGICS 내 차량 내부를 조립하는 의장 단계에도 ‘아틀라스2’ 투입이 예정돼 있다.
로봇이 자동차 생산에 들어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로봇은 배터리만 교체하면 24시간 작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산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에게는 단순한 생산성 향상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듯하다.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을 확대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등 노조에게 막강한 권한을 주고 기업을 옥죄는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 국회 통과 등 집권 여당·정부의 노조 지원과 한국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컨트롤할 수 있는 ‘대항마’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현대차 울산공장과 기아 광주공장을 가보면 토요타 일본 공장이나 르노코리아 부산공장과 사뭇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라인의 한두 명은 휴대폰을 하거나 신문을 읽는 장면이다. 비상 상황에 대비하고 휴식을 위한 차원이라고 하지만 다른 글로벌 공장들에는 흔하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자동차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UPH(시간당 생산대수)를 보면 바로 국내 현대차 공장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과 체코 공장은 UPH가 70에 육박하지만 울산공장의 경우 평균 45에 그치고 있다. 임금은 반대다. 지난해 현대차의 노동자 평균 임금은 약 1억 2400만 원이고, 미국 자동차 빅 3의 평균임금은 8만 4000달러(약 1억 1700만 원)이다.
고임금임에도 생산성은 미국의 3분의 2수준인 상황에서 정 회장의 로봇 전략은 오히려 박수받을 일이 아닐까.
정 회장은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정상회담 때 지난 3월 발표한 4년간 총 210억 달러 투자에서 50억 달러(약 7조 원)를 추가한다고 했다. 미국에 연 3만 대 규모의 로봇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이다.
가뜩이나 미국 내 현대차그룹의 연간 자동차 생산량을 100만 대에서 170만 대로 확대키로 해 현대차·기아 노조가 한국 내 생산라인 축소를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메가톤급’ 소식을 추가로 알린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발끈했다. “외국 투자에 대한 허탈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성과에 걸맞는 공정한 분배와 조합원에 대한 투자가 가장 가치 있는 투자”라고 비판했다.
최근 미국의 관세 부과 등으로 올 2분기 영업이익이 1조 6000억 원이나 감소했는데도 현대차 노조는 임단협에서 억지에 가까운 요구를 늘어놓고 있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현대제철, GGM 등 현대차그룹 계열사에서도 파업 등 노조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생산라인에서 근로자가 로봇으로 대체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로봇 투입만으로 ‘생산성 향상’과 ‘노조 대응력 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나아가 이번 달 중순 국내 기관 투자자들을 대거 이끌고 미국 보스톤다이나믹스 본사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 투자를 본격적으로 이끌고 기업 가치를 올리기 위함이다. 증권가 반응도 좋다.
정 회장이 4년전 로봇 회사를 인수할 때만 해도 “일본 자동차 업체들처럼 포기할 것” “상업적으로 휴먼 로봇은 실패할 것”이라는 반응이었으나 이젠 그룹의 탄탄한 미래를 보장하는 ‘신의 한수’로 인식되고 있다.
배동진 서울경제부장 djbae@busan.com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