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스테이블코인, 은행 시스템의 위기 아닌 기회
류홍열 비댁스 대표·변호사
디지털 자산 시대, 금융 혁신 핵심 부상
스테이블코인 기반 은행 경쟁력 강화
글로벌 자본시장 연결… 신사업 확장
원화 국제화라는 긍정적 효과도 주목
블록체인 특구 부산… 혁신의 최전선
아시아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할 기회
최근 금융·블록체인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단연 스테이블코인이다. 디지털 자산 시장의 변동성을 최소화하고, 기존 금융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결제·정산 수단으로의 가능성 때문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이 은행 본연의 사업 기반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필자의 회사는 부산시가 지원하고 우리은행이 운영하는 부산 디노랩(Digital Innovation Lab) 1기 기업으로 선정된 뒤 디노랩이 주최한 ‘오픈 이노베이션 데이’에서 블록체인 혁신 사업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이 행사에는 7개 기업이 참가했는데, 비댁스(BDACS)는 첫 번째 발표를 맡아 스테이블코인의 도입 필요성과 발행 구조, 그리고 각 이해관계자의 역할을 주제로 발표했다. 스테이블코인이 워낙 ‘핫’한 주제였던 만큼, 발표 직후 청중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은행 관계자들이 보인 반응은 흥미로웠다.
은행들이 가장 먼저 지적한 우려는 수탁고 감소였다. 고객 자금이 은행 예금으로 유입되지 않고 스테이블코인으로 전환돼 외부 지갑에 보관된다면, 은행의 전통적인 수익 기반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제기된 우려는 빅테크와의 경쟁이었다. 글로벌 IT 기업들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은행이 기존 금융상품만으로는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또 다른 지점은 전통 금융상품의 매력 약화였다. 예·적금이나 카드 서비스보다 더 빠르고 저렴한 대안이 등장하면, 고객을 붙잡아 두기가 갈수록 힘들어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엿보였다.
이에 대해 필자는 정반대 시각을 제시했다. 스테이블코인은 오히려 은행이 새로운 기회를 선도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구체적 가능성은 여러 영역에서 확인된다. 우선 결제 인프라 혁신이다.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하면 은행은 결제·송금 비용을 줄이고 해외 송금이나 대규모 정산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다. 지금도 글로벌 결제망은 복잡하고 수수료가 높은데 스테이블코인은 이를 단순화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스테이블코인 연계 상품 개발도 가능하다. 은행이 직접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거나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예금·투자·대출 상품을 설계하면 기존 금융상품보다 더 매력적인 옵션을 고객에게 제시할 수 있다. 초기에는 다소 생소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은행이 블록체인 금융의 중심에 서는 길이 될 수 있다. 신사업 영역 확장도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청산·결제, 디지털 자산 수탁, 글로벌 자본시장 연결 등은 은행이 그간 쌓아온 신뢰 자산을 바탕으로 진출할 수 있는 분야다. 과거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위기가 아닌 기회였듯, 스테이블코인도 은행에 ‘도전과 확장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이 흐름 속에서 은행들뿐 아니라 한국은행도 긴장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준비해 왔는데, 이재명 정부가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강한 의지를 표출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될 경우 해외로 국부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우려가 다소 과도하다고 본다. 이미 국내 자본시장은 해외 주식과 채권 투자에 활짝 열려 있으며 기업과 개인의 해외 투자 역시 일상화돼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국내외에서 사용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국부 유출로 이어진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무역과 투자에서 활용된다면, 원화 국제화라는 긍정적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IT 산업이 지금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2000년대 초 ‘인터넷 버블’ 시절 이뤄진 과감한 인프라 투자와 기업가들의 혁신 덕분이었다. 당시의 시도는 지금의 네이버, 카카오 같은 토종 플랫폼이 글로벌 경쟁자들을 제치고 국내 시장을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스테이블코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불확실성과 우려가 더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 혁신의 생태계를 키우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결국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에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위기만 바라보면 새로운 경쟁자에게 밀려날 수 있지만, 기회를 본다면 결제 혁신, 상품 혁신, 신사업 확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정부가 지정한 블록체인 특구로서 이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 디노랩과 같이 부산시와 금융기관이 협력해 혁신 기업을 지원하는 시도는 좋은 출발점이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술과 서비스 기업에 대한 더 적극적인 지원과 실증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부산이 단순히 국내를 넘어, 아시아의 블록체인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