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풍류회 원조, 조선시대 난로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조선에 난로회(暖爐會)가 있었다. 난로회는 음력 10월이 되면 다가오는 추위를 막기 위해 화로에 둘러앉아 소고기를 구워 먹던 세시풍속이었다. 설마하니 우리 선조들이 입 다물고 고기만 구워 먹었을까. 선비들은 음식을 나누고,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다들 풍류쟁이였다.

18세기 시인 신광하가 쓴 ‘벙거짓골에 소고기를 굽다(詠氈鐵煮肉)’라는 시에는 난로회 현장이 잘 묘사되어 있다. ‘고기 썰어 벙거짓골에 늘어놓고/몇 사람씩 화로를 둘러앉는다/자글자글 구우며 대강 뒤집다/젓가락을 뻗어보니 벌써 다 없어졌다.’ 한우 앞에만 앉으면, 예나 지금이나 인지상정이 그렇다. 난로회의 들뜬 분위기와 미식의 즐거움이 그대로 전달되는 시다.

우리나라 세시풍속에 관해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난로회를 ‘조선시대 한양 풍속으로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 놓고 번철을 올려 쇠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하여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었다”라고 상세히 전한다. 세계를 사로잡은 코리안 바비큐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우린 배달의 민족 이전에, ‘난로의 민족’이었다.

잘 먹고 나서 꼭 불평하는 사람이 있다. 박지원은 <연암집>의 ‘만휴당기(晩休堂記)’에 “난로회를 하면 방안이 연기로 후끈하고 파·마늘·고기 누린내 등이 몸에 밴다”라고 다소 악플성 후기를 남겼다. 그가 남긴 <호질(虎叱)>이나 <광문자전(廣文者傳)>에는 고기를 즐기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을 보아, 연암 또한 소고기를 즐겼을 것으로 보인다. 실학자 박지원은 청나라의 기계장치를 보고 감탄해서 기록도 남겼다. 오늘날 고깃집의 후드와 환풍기를 봤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난로회는 왕실에서도 개최했다. 문화를 융성시킨 개혁 군주 정조(正祖)는 난로회를 자주 열었다. 정조는 난로회에서 신하들과 주고받은 시를 묶어 <갱재축(賡載軸)>이라는 문집을 내기도 했다. 난로회가 단순한 친목의 차원을 넘어, 왕과 신하의 유대를 강화하고 국정을 논하는 정치적 소통의 장으로 활용된 것이다. 김홍도의 ‘설후야연(雪後夜宴)’에는 눈 내린 겨울날, 작자 미상의 ‘상춘야연도(賞春野宴圖)’에는 봄날 고기를 굽는 모습이 담겨 있다. 오늘날의 난로회는 무엇을 남길지 궁금해진다.


김홍도의 ‘설후야연(雪後夜宴)’.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제공 김홍도의 ‘설후야연(雪後夜宴)’.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진흥원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