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장르의 전복, 감정의 승리
영화평론가
500만 관객 돌파 흥행작 '좀비딸'
공포·액션 대신 선택한 가족 신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재미 선사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부재가 원인일까, 웹 콘텐츠의 대중적인 인기 때문일까. 매년 웹소설과 웹툰의 영화화가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의미로 최근 개봉한 영화 ‘좀비딸’은 특별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디지털 콘텐츠가 영화라는 전통적 매체로 옮겨지면서 대중들의 선택을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2025년 흥행작이 된 ‘좀비딸’은 누적 조회 수 5억 뷰를 기록한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을 원작으로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단순히 원작의 인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좀비딸’의 내용은 뻔하다. 좀비로 변해버린 딸을 끝까지 지키려는 아버지의 사투라는 설정은 예측 가능하며, 좀비 장르에 가족애라는 보편적 감정을 다루는 것도 자주 보았던 방식이다. 하지만 이 ‘뻔함’ 속에서 영화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통해 한국적 좀비영화의 가능성을 확인했고, 이후 수많은 좀비 콘텐츠에 노출되었다. 그런데 ‘좀비딸’은 기존 좀비물이 추구했던 공포와 액션, 생존 서스펜스에서 벗어나 가족 신파극이라는 다른 길을 선택한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좀비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보호받아야 할 가족이다. 생존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좀비딸’은 휴먼 좀비 코미디라는 독특한 장르적 정체성을 구축한다. 맹수 전문 사육사 ‘정환’(조정석)은 중학생 딸 ‘수아’(최유리)의 생일을 맞아 함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티격태격 장난을 치는 부녀의 모습이 마치 친구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좀비가 인간을 무는 기이한 광경에 부녀는 정환의 모친이자 수아의 할머니 ‘밤순’(이정은)이 있는 은봉리로 대피하기로 한다.
하지만 부녀가 살고 있는 동네는 이미 좀비 떼가 창궐해 있다. 동네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숨어 있던 수아가 어린이 좀비에게 물리고 만다. 좀비가 보이면 즉시 신고하거나 사살하라는 정부의 지침을 어긴 정환은 감염된 딸을 데리고 몰래 은봉리로 간다. 이제 정환은 좀비딸의 정체를 숨겨야 하면서도, 딸이 사람들에 섞여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간화 되는 훈련을 시작한다. 밤순은 물론 정환의 동네 친구 ‘동배’(윤경호)까지 이 훈련에 가담한다.
좀비가 된 딸과 그를 돌보는 정환 사이의 일상적 에피소드들은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따뜻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는 좀비라는 극한 상황을 통해 오히려 평범한 가족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는 역설적 효과를 만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영화가 좀비에 대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면서도 장르적 재미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포 대신 웃음을, 절망 대신 희망을, 파괴 대신 보호를 선택하면서도 좀비물이 가져야 할 긴장감과 극적 구조를 유지한다.
‘좀비딸’은 새롭고도 익숙한 재미를 제공하는 영화다. 즉 좀비 소재는 익숙하지만 가족 신파극이라는 접근은 새로웠고,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익숙하지만 좀비딸이라는 설정은 새로웠다. 이러한 균형감각이 바로 웹툰 원작이 영화로 성공적으로 각색될 수 있었던 핵심이다. 이처럼 영화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에게 익숙한 웹툰의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도, 전 연령대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놓치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 ‘좀비딸’은 한 편의 영화가 흥행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존 장르의 관습을 깨뜨리면서도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며, 웹툰이라는 새로운 원천 콘텐츠가 영화계에 가져올 수 있는 신선함을 증명한다. 결국 ‘좀비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장르는 틀이 아니라 도구이며, 진정한 감동은 새로운 형식이 아니라 진실한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