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여름의 저녁은 수국의 빛으로 어두워지기에
조용미(1962~)
수국이 비를 몰고 온다
이마를 짚어보고 수국 앞으로 간다 슬픔이 아닌 비를 몰고 왔기에 몸은 없고 감각이 없었다
밤의 진불암, 머리맡의 빗소리에 방문을 열면 큰 수국이 후두둑 푸른 빛을 내뿜었다
수국이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은 적 있다
누군가 알아보지 못할까봐 그 사랑은 자주 색깔을 바꾸었다 아나벨 로사리오 블루스카이 인더레인
수국이라는 나라에서 부쳐 온 등기우편은 얼룩진 날짜 속 어디쯤을 떠돌고 있는지
진심을 다른 마음으로 숨기고 수국은 자꾸 피어났다 장마는 그치지 않는다
여름의 저녁은 수국의 빛으로 어두워지기에 마음이 단순해졌다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 (2024) 중에서
수국은 한여름, 주로 장마철에 피는 꽃인데요. 물을 엄청 좋아한답니다. 토양에 따라 변하는 꽃 색깔 때문인지 변덕, 변심이란 꽃말도 있고 그와 달리 진실한 사랑이란 꽃말도 있는데요. 먼 곳에서 온 등기우편이 어딘가 떠돌고 있을 거란 문장이 거기서 온 것만 같습니다.
비는 자연현상이기에 앞서 사랑이나 너그러움 같은 고귀한 감정을 드러내 주는 어떤 믿음, 그래서 수국이 슬픔 아닌 비를 몰고 온다는 시인의 말에 공감해봅니다.
세상 모든 꽃들은 집착을 떠난 진불암의 것. 진심을 숨기고 드러나는 시를 닮은 듯합니다. 미스 사오리, 미카의 물떼새 같은 특이한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하는 수국. 작은 꽃 하나하나가 모여 풍성하고 둥글게 뭉쳐진 꽃
송이가 이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