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역을 위해 다시 공공의대 추진을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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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지역사회부장

지역 응급실 '알바'하던 전공의들
수련병원 찾아 속속 수도권으로
밀양과 강릉 응급 체계 '빨간불'

표류 중 공공의대 논의 불 지펴야
로컬에 문턱 낮춰 지역 의사 확보
‘의료 질’ 운운 의료계 개입 차단을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이른바 ‘공공의대’ 논의는 대입 수시와 닮았다. ‘현대판 음서제’가 될 거란 우려 속에 입시 결과나 졸업생 능력에 노골적인 의구심을 드러내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나 수능 시절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서부산권 고교가 수시 이후 사립학교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국영수 일변도를 벗어던진 고등학교 풍경도 한결 자유로워 보인다. 제도의 기본 취지는 이해할 생각도 않고 폄하만 하지 않았나 반성해 보는 요즘이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사회다. 어느 제도든 그에 대한 작용과 반작용은 있기 마련이었던 거다.

수시 이야기를 꺼낸 건 공공의대에 대한 거부감을 누그러뜨려야 할 시점이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특히나 지역에서는 말이다.

공공의대 논의는 10년 전 박근혜 정부 시절 순천대 의대 관련 법안을 놓고 시작됐다. 사관학교처럼 학비와 기숙사를 전액 국비로 지원하고, 면허 취득 후에는 일정 기간 국가에서 지정하는 의료 취약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복무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논의는 문재인 정부 시절까지 이어졌지만 반발이 상당했다. 그 후 바통을 넘겨받은 윤석열 정부는 공공의대 대신 의대 증원 쪽으로 가닥을 잡으며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 상태다.

지금도 ‘공공’의대가 배출한 의사와 그들의 의료 서비스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이 크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불거진 의정 갈등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건 지역이었다. 이제는 지역이 나서서 공공의대를 더 강하게 요구할 시점이다. 현장을 지킬 필수 인력도 아쉬운 터라 공공의대의 입시 결과와 의사의 질은 따질 계제가 아니다.

이달 경남 밀양에서는 밀양윤병원이 지역응급의료기관 지정을 자진반납했다. 응급실을 운영해야 하는데 의사 5명 중 전공의 출신 3명이 수련병원으로 돌아간다며 동시에 사직서를 낸 것이다. 이 병원은 밀양의 유일한 지역응급의료기관이었다. 강릉의료원 응급실에서도 의사 2명이 수도권 수련병원으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비상이다.

과연 이 난리통이 밀양과 강릉에만 그치고 말까. 모르긴 해도 하반기 전공의 모집이 가속화될 수록 지역의 응급의료 체계는 더 흔들릴 게 뻔하다. ‘우리 요구 안 들어줬으니 잠시 지방에 가셔 알바라도 하고 오겠다’고 생각한 전공의들이 과연 저들뿐이었을까.

급한 대로 경남도 등 일부 지역에서 지역 필수 의사제가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순조로운 출발을 보이는 모양새다. 경남으로 전입온 필수과 의사에게는 병원 약정 급여 외에 매달 400만 원의 근무 수당을 주기로 했다. 전입 환영금에 매달 양육 지원금까지 약속했더니 정원 24명에 19명이 지원했다.

그러나 지역의사제 자체는 대증 요법에 지나지 않는다. ‘의료 태업’ 사태를 거치며 수당 몇 푼으로는 고삐 풀린 의료진을 붙들어 둘 수 없다는 게 드러났다. 시급한 지역의 필수 의료 인력은 지역 필수 의사제로 충당하고, 장기적으로 부울경처럼 3~4개의 광역지자체가 뭉쳐서 지역별로 공공의대를 도입할 수 있도록 고삐를 조여야 할 타이밍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의료야말로 그 어느 분야보다 더 로컬이 강조되고 공공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걸 다들 여실히 깨달았다.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 의대 출신 의사의 지역 정착률은 30% 안팎. 그 동네에서 의사 면허를 따도 그 동네에서 장사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역에서 의사를 하는 게 싫다면 차라리 ‘로컬 보이’에게 그 기회를 주고 그에 대한 충성심과 의무를 요구하는 게 맞다. 적어도 40대까진 면허를 받은 지역에서 의술로 보답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후 거취는 스스로 자신이 정하도록 하면 될 일이다. 추가적인 지역 봉사에 대해서는 지역 필수 의사제 등으로 이를 보전한다면 더 큰 시너지가 기대된다.

다들 제 자식 의사 만들지 못해 안달인 시절에 의사 진입 장벽이 낮고, 지원도 파격적이라는 인식이 확산하는 건 지역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당장 지난해 의대 증원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수도권 극성 학부모의 전학 문의로 부산시교육청 전화통에 불이 났던 해프닝을 기억해 보라.

다행스러운 건 의외로 공공의대 추진에는 여야가 큰 대립각이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의료계는 공공의대 논의마저도 반발할 게 뻔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의료계의 입장에 공감할 이들은 극소수다. ‘공공의대는 제대로 된 의사를 배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다시 여론을 호도하겠지만 그간 의료계가 보여준 민낯이 너무 추했다.

서글프게도 당장 지역에서 필요한 건 의료진의 질에 앞서 의료진의 숫자다. 새 정부와 광역 지자체들의 빠르고 탄력 있는 공공의대 추진을 기대한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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