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지연된 정의'마저 내팽개친 광복절 특사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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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상실형 확정 늦어져
4년 임기 다 채웠던 윤미향
특별사면 명단에까지 포함

야당은 "반대" 외치면서도
뒤로는 '사면 거래'용 문자
특별사면권 존재 이유 무색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지연된 정의’조차 아쉽기만 하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과 횡령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뒤늦게 징역 1년 6개월(집행유예 3년) 형을 확정 받은 윤미향 전 국회의원이 판결 선고 불과 4개월 만에 특별사면됐다.

징역 1년 6개월은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한다. 그러나 윤 전 의원은 임기 4년을 보란 듯 채웠다. 터무니없이 지연된 재판 덕이다. 검찰 기소 후 무려 4년 2개월이 지나서야 판결이 났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윤 전 의원 사례를 두고 법철학의 오래된 경구를 떠올렸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그런데 이번 사면은 ‘지연된 정의’마저도 헌신짝으로 만들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일부 정치권이 이번 사면을 ‘죄의 사면’이 아니라 ‘억울한 피해자 구제’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의원을 ‘사법 피해자’로 표현했다. 돈만 세탁되는 것이 아니다. 범죄도 세탁된다.

굳이 다시 확인하지만, 법원 판결에 따르면 윤 전 의원은 명백한 범죄자다. 단순히 회계 절차를 소홀히 한, 예를 들어 단체 명의의 통장을 사용해야 함에도 개인 명의 통장을 사용했다던지 하는, 그런 수준이 아니다.

2019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장례 당시, 조문객들이 낸 현장 조의금만으로도 장례비는 충분히 충당됐다. 그럼에도 윤 전 의원은 장례 후로도 한 달 가까이 SNS에 ‘장례비가 부족하다’는 글을 남겨 1억 2000만 원가량을 모금했다. 기부자들은 당연히 그 돈이 장례비로 쓰일 줄 알았지만, 그 중 1억 원 이상이 여러 시민단체 후원과 단체 활동가 자녀 장학금 등 엉뚱한 용도로 사용됐다.

그뿐 아니다. 윤 전 의원은 십수 년 동안 단체 지원금과 위안부 피해자 후원금 8000만 원 상당을 용도 불명으로 사용했고, 국고보조금 6000여만 원을 부정하게 사용한 혐의도 법원에서 인정됐다.

야당은 이번 사면에 대해 격분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사면 발표 직후 “사면권이 대통령 고유 권한이라고 하지만, 일말의 반성도 없는 파렴치한 범죄자들에게 면죄부 주는 사면은 모독”이라며 “국민의힘은 어떤 비리 정치인 사면에도 반대한다”고 밝혔다.

‘야당이 모처럼 옳은 말을 하는구나’ 놀랐고, 그 말이 송 위원장의 발언이라는 점에서 재차 놀랐다. 송 위원장은 격분하기 며칠 전 대통령실 관계자에게 자당 홍문종·정찬민·심학봉 전 의원의 사면을 부탁하는 문자를 보냈다. 홍 전 의원은 횡령, 정·심 전 의원은 뇌물수수로 각각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이들 모두 윤 전 의원과 함께 사면됐다. 송 위원장은 자신의 문자 내용 따윈 며칠 새 모조리 잊어버린 듯 하다.

송 위원장은 윤 전 의원을 ‘파렴치범’으로 규정했다. 같은 사면 명단에 오른 당 동료들에 대해선 뭐라고 평가할지 궁금하다. 혹여 추 의원이 그러했듯 ‘사법 피해자’라 우길 생각일까. 이렇게 제 식구는 사법 피해자로, 상대는 파렴치범으로 규정해 목소리를 높이고, 정작 뒤로는 포로 교환하듯 사면 거래를 한다. 이쯤 되면 대통령 특별사면권의 존재 이유 자체가 무색하다.

윤 전 의원은 사면 직전 페이스북에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향해 “참 불쌍하다”고 썼다. 맞다. ‘파렴치범’임에도 ‘사법 피해자’로 둔갑한 힘있는 사람들을 보며, 힘없고 빽 없는 선량한 서민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메마른 욕지거리 정도일 테다. 힘있는 사람들의 시선엔 그런 그들이 그저 불쌍하게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윤 전 의원은 당신이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중 과거 당신이 활동했던 단체에 기부한 이도 적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국 당신이 함부로 쓴 후원금 또한 (일부이나마) 바로 힘없고 빽 없는 그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셈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후원금이 엉뚱한 곳에 쓰인 것에 분노해 후원금 반환 소송을 벌였고, 법원은 “후원금을 모두 돌려주라”고 화해 권고 결정했다. 윤 전 의원은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윤 전 의원은 그들이 불쌍하다고 혀를 차기 전에 법원의 결정부터 따라야 할 테다.

그리고 이번 사면을 결정한 집권 여당의 모든 사람들, 또 사면을 거래하려 했던 야당 정치인들은 “법무부는 이용수 할머니에게 사면 여부를 여쭤봤나”라는 김재련 변호사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중 생존자는 이제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해 6명밖에 남질 않았다. 이용수 할머니는 윤 전 의원의 사면에 대해 말을 아꼈다. 윤 전 의원 사면에 대한 그분들의 심경을 함부로 추측할 순 없지만,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어떤 권력도 그분들보다 먼저 윤 전 의원의 죄를 용서할 순 없다.

김종열 정치부장 bell10@busan.com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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