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폭 피폭자 부산에 430명 생존
제2차 세계 대전 막바지인 1945년 7월 26일. 미국·영국·중국의 연합국 정상들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포츠담 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1억 총옥쇄’의 망상에 빠진 일본 제국 내 군부는 ‘죽으면 야스쿠니 신사에 간다’라고 국민들을 세뇌시켜 소모전을 준비했다. 이에따라 미국은 일본의 국가 존속이 위협을 받아야 항복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 사흘 뒤인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핵무기를 실전에 투입한 사례였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 히로시마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다. 이들은 손으로 앞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였다고 증언한다.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났고, 엄청난 폭풍이 주변 1.6km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뒤이어 화재가 들이닥쳤고, 몇 시간 뒤 상공으로부터 검은 비가 쏟아졌다. 타는 듯한 갈증에 고농도의 방사능으로 오염된 빗물을 받아 마신 사람들은 더 일찍 죽었다. 당시 조선인은 히로시마에서 7만, 나가사키에서 3만 명이 원자폭탄에 피해를 당해 그해 연말까지 5만 명이 사망했다. 나머지 5만 명 중 4만 3000명이 한반도의 남쪽으로, 2000명이 북측으로 귀국했다.
귀국한 피폭자는 히로시마 출신이 3만 명, 나가사키 1만 3000명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피폭자 가운데 현재까지 1800여 명이 생존해 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회원은 430여 명에 달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류병문 부산지부장은 “피폭 피해자 1세들은 4~5년 지나면 몇 명 남지 않을 것 같다. 2세 가운데 장애인들이 많은데 아무런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어, 부산시에서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홈페이지(www.wonpok.or.kr) 자료실에서는 지옥도와 같았던 당시 히로시마 원폭 피해 사진을 찾아볼 수 있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