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폭염 시대, 여름 소비를 다시 묻다
김동주 경제부 차장
폭염에 '여름=비수기' 공식 깨진 유통가
체험·IP·푸드 콘텐츠로 소비·관광 결합
호황 뒤엔 냉방 전력 증가·탄소배출 증가
환경 지키는 지속가능한 유통의 길 찾아야
한여름은 전통적으로 유통업계의 ‘비수기’였다. 무더위를 피해 여행지로 인파가 빠져나가고, 도심 상권은 썰렁해지는 것이 통념이었다. 하지만 최근 부산 유통가는 정반대 흐름을 보였다. 기후 변화가 몰고 온 기록적 폭염이 소비 행태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7월은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1994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무더운 7월이었다. 7월 전국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각각 15일, 23일로 평년보다 크게 늘었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 나타나기도 했다. 낮에는 바깥 활동이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시민과 관광객 모두 냉방이 잘된 실내 공간으로 몰렸다. 결과적으로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은 단순한 ‘쇼핑 공간’을 넘어 피서지와 문화·미식 공간 역할을 겸하게 됐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은 ‘포켓몬’으로 히트를 쳤다. 부산교통공사, 포켓몬코리아와 손잡고 ‘포켓몬 캡슐 스테이션 인 부산’을 선보였는데, 시민은 물론 관광객 발길까지 대거 끌어들였다. 한정판 QR 승차권을 판매하는 도시철도 역에는 길게 줄이 이어졌고, 팝업스토어가 열린 부산본점에도 인파가 몰렸다. 롯데백화점 부산 지역 점포의 7월 1일~8월 10일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평일 내점객도 눈에 띄게 늘었고, 7월 한 달간 외국인 관광객 구매율은 전년 동기 대비 최대 60% 뛰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은 피서객 비중이 높은 시즌 특성을 반영해 ‘먹캉스’ 콘텐츠를 강화했다. 주로 패션 기획전 위주로 활용했던 이벤트홀 공간에 20여 개 디저트·베이커리 브랜드가 참여하는 ‘부산 푸드페스타’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의 같은 기간 매출은 올해 상반기 평균 신장률인 5%대를 웃도는 6% 후반대를 기록했다.
IP 캐릭터 협업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신세계 센텀시티점의 ‘외모지상주의’ 팝업스토어는 주인공들의 부산 여행 콘셉트로 꾸몄고, 오픈 직후 주말 방문객 2만 명을 모았다. 롯데백화점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일본 인기 만화잡지 ‘주간 소년 점프’의 굿즈를 판매하는 ‘점프숍 인 부산’ 팝업스토어도 큰 인기를 끌었다.
체험형과 IP·푸드 콘텐츠의 결합은 단순한 피서 수단을 넘어, 소비자들의 SNS 인증샷과 실시간 후기 공유로 이어지며 파급력을 키웠다. 현장에서의 즐거움이 디지털 공간에서 재확산되면서 굿즈와 F&B 매출까지 동반 상승했다. 특히 MZ세대뿐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까지 참여해 단발성 방문이 아닌 ‘목적형 재방문’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됐다. 한 백화점 마케팅 담당자는 “여름철에는 더위와 지루함을 동시에 해소하는 체험형 킬러 콘텐츠가 필수”라며 “현장 경험이 곧 콘텐츠가 되는 시대, 얼마나 차별화된 이야기를 만드느냐가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부산관광공사의 2024년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산으로 여행 온 외국인 관광객의 57.6%는 쇼핑을 즐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름철에는 면세점·쇼핑몰·전시관 등 실내형 관광지가 강세를 보이며, 관광과 소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올여름 백화점 현장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롯데백화점 부산본점과 신세계 센텀시티점 모두 외국인 고객 비중이 전년 대비 크게 늘었고, 인기 팝업스토어나 프리미엄 패션·F&B 매장이 외국인 관광객의 주요 방문 코스로 자리 잡았다.
호황의 그림자도 짙다. 대형 건물의 냉방 전력 사용이 급증하면서 운영 비용과 탄소 배출이 동반 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에너지 절감과 ESG 경영의 균형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다. 냉방 효율을 높이는 인공지능 기반 공조시스템, 태양광·지열 등 재생에너지 전환, 매장 내 친환경 조명과 단열 설계 강화 같은 기술적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대형 이벤트·팝업 운영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기나 친환경 소재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쇼핑객이 몰리는 F&B 공간에서 발생하는 쓰레기와 음식물 폐기물 관리도 중요한 과제다.
‘여름=비수기’라는 공식은 이미 깨졌다. 봄가을이 짧아지면서, 길어진 여름이 오히려 ‘체험·실내형 소비’ 중심의 성수기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호황을 지속하려면 매출 성장 곡선과 탄소 감축 곡선을 함께 그려야 한다. 단기적인 소비 열기 뒤에 남는 환경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기후 변화 시대의 승자는 단순히 더위를 기회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을 지키는 해법까지 찾아내는 유통업체일 것이다. 이는 고객 신뢰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마케팅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다.
김동주 기자 nicedj@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