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명을 더 알고 싶다
박종호 스포츠라이프부 선임기자
신문·출판 등 활자 매체 위기 심화 속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도서 목록 밝혀
국정 철학·시대적 관심사 국민께 알리고
고요한 출판 시장에 파문 던져 줬으면
여름휴가와 책 이야기를 할 생각이다. 정치 이야기인가 해서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이쯤에서 중단하는 게 좋다. 마침내, 나도 떠난다. 이 시간을 기다리며 지난 몇 달을 버텼다. 이번 휴가는 일찌감치 일본으로 가기로 정했다. 그런데 꼭 초를 치는 사람이 있다. 모 씨가 일본 대지진 이야기를 꺼냈다. 그게 다 만화에서 나온 근거 없는 설에 불과하고, 이미 예언한 날짜도 지났다고 말해 줬다.
현대 과학으로는 지진이 언제, 어디서, 얼마나 크게 일어날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하다. 날짜가 예고된 대재앙 따위가 과연 이 세상에 있을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난달은 지나갔지만, 이번 달에는 오지 않겠느냐”라고 우긴다. 그저 며칠 ‘휴가’를 가겠다는데, ‘휴거’ 기다리듯이 지진을 기다리다니. 내일 뜰 태양을 기대하며 책 몇 권 챙겨 바람과 함께 사라지련다.
그제야 휴가철 추천 독서 목록이 요즘 통 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엔 신문, 방송, 출판계에서 여름만 되면 ‘휴가철 추천 도서’나 ‘피서지에서 읽기 좋은 책’ 같은 리스트가 꼭 나왔다.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도서 목록도 몇 년째 감감무소식이다. 역대 대통령이 휴가 때 읽었던 책은 국정 철학이나 시대적 관심사를 엿볼 수 있어 흥미로운 지표가 되었는데 말이다.
찾아보니 김영삼 대통령이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기 시작했다. 김 대통령이 1996년 여름휴가 때 읽은 책 공개가 ‘독서 정치’의 시초로 여겨진다. 김대중 대통령은 독서광이자 애서가로 유명하다. 오죽했으면 “바빠서 책을 읽지 못하면 감옥이 그리울 때가 있어요”라는 말까지 했을까. 그의 휴가 도서 목록은 매년 출판계와 정치권의 큰 관심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책 읽기를 매우 좋아했다. 그의 독서 스타일은 ‘왕성한 지적 호기심을 갖고 있고, 독서의 내용을 현실 정치에 활용하려 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노 대통령은 “좋은 책이 필요합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보면 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명박 대통령은 실용적인 독서가이자 속독파로 알려진다. 고전과 역사서를 좋아하는 박근혜 대통령은 휴가 기간 독서를 통해 국정 운영 구상을 가다듬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스스로를 ‘활자 중독’이라 일컬을 만큼 독서를 즐겼고, 지금도 평산책방 주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공식적인 휴가 독서 목록이 알려진 바가 없다. 윤 대통령이 읽었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에 대해서도 어쩌면 평생 읽은 게 그 한 권뿐일지도 모른다는 박한 평가까지 나온다. 차라리 휴가 때 마신 주류 리스트를 공개하면 어땠을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가 감방에서 속옷 차림으로 버텼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조차 망상이었음을 깨달았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운명의 활자매체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지난주에 병원 대기실에서 한나절 동안 앉아 있었는데, 그곳에 놓인 신문들을 아무도 들춰보지 않는 모습에 새삼 충격을 받았다. 주지하듯이 종이 신문이나 책을 보던 시대에서 유튜브, 넷플릭스 같은 영상 중심의 소비로 옮겨가면서 독서할 시간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 예전에 신문과 잡지가 주요 정보원일 때는 휴가철 특집 기획도 많았다.
여름철은 출판 시장의 비수기로 여겨진다. 여름휴가를 떠나거나 야외 활동을 즐기면서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출판사들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여름철에는 대작이나 기대작의 출간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요즘엔 SNS 인증샷, 독서 모임,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이 세지며 ‘추천 도서 리스트’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단다. 사정은 잘 알겠는데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그래도 활자매체가 뛰어놀아야 지금처럼 K영화나 K드라마가 날아다닐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일까지 하계휴가 중인데 독서와 영화감상 등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통령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소개된 바는 아직 없다. 우린 이재명 대통령을 더 알고 싶다. 이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들이 뒤늦게라도 알려져 고요한 출판 시장에 작은 파문이라도 일었으면 좋겠다. 주가지수 5000시대도 좋지만,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지금까지 읽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당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 주려고 한다. 첫째, 바닷가에서 읽기 좋은 소설. 둘째, 마음이 편안해지는 에세이. 셋째, 한두 시간 안에 읽는 짧은 책. 넷째, 시원한 공포·추리물. 다섯째, 퇴직 후 인생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책. “이 중 어떤 종류의 책을 골라 드릴까요”라고 묻는 친절한 분이 당신 주변에도 있다. 에이, 그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AI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