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해양수도의 조건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부산은 해양 분야 구심점 갈망
모두 다 가지려는 욕심 버리고
인접 해양도시와 역할분담해야
수도로서의 리더십 확보 가능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부산이 명실상부한 해양수도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맞는 말이다. 2000년 연말을 앞둔 시점 고 안상영 시장의 선언으로 시작된 해양수도 행보는 해양산업 육성 조례 제정(2005년)과 해양 공공기관 부산 이전(2012~2017년) 등으로 느린 걸음을 이어왔다. 기대에 한참 못미치는 속도와 강도에 부산의 경쟁력이 바닥나는가 싶던 시점, 해수부가 부산으로 오게 됐다. 국가 해양 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부처가 부산에 자리잡음으로써, 산업과 연구·개발, 인재 양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구심력이 생기기를 부산은 원한다.
‘수도’는 당연히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 해양 관련 모든 논의의 중심이 되어야 해양수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통적 해양 산업은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디지털 기술, 여기에 미래 산업의 기본 조건이라 할 탈탄소 친환경 기술로 탈바꿈하고, 해운 시황 정보와 해양 금융, 해사 법률 등 부가가치 높은 해양 신산업도 해양수도를 중심으로 일으켜야 한다.
하지만, 수도 혼자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한다. 북극항로가 지나가는 한반도 동남권 해안 도시 전체가 새로운 기회를 맞게 되고, 이에 대비해 벌써 각 지역 나름의 장점을 살린 발전 전략을 세우고 있다. 경북도는 포항 영일만항을 북극항로 관문항으로 육성하려는 전략을 공표한 바 있고, 여수광양항만공사도 광양항을 북극항로 거점항으로 구축하기 위한 전략을 모색하는 세미나를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었다. 러시아 극동 거점 도시인 블라디보스토크행 정기 뱃길을 운영했던 강원도 동해·속초항도 각자 북극항로와 연관된 해양물류산업 활성화를 모색하고 있다.
광양에서부터 마산, 부산, 울산, 포항, 동해, 속초까지 우리나라 해안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지역이 북극항로 영향권이다. 각 지역이 비슷한 산업 분야에 비슷한 화물만 유치하려 한다면 제살깎기 경쟁이 불가피할 것이다. 각 지역 산업 기반과 특성을 반영한 역할 분담이 필수다.
여기서 해양수도 부산의 역할은 무엇일까?
정책 총괄 부처가 있으니, 해수부 공무원들이 흔히 지방에서 해수부를 일컫는 ‘본부’가 되는 것이다. 연구개발과 정책 수립의 사령탑 역할을 하면서, 각 지역 해양산업 정책의 조정자 역할을 해내는 것이다. 여기에 싱가포르나 홍콩이 걸어온 길처럼 해양 금융과 해운정보 서비스, 해사법원 등으로 고부가가치 서비스 산업이 활발히 영위되는 부산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부산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해양산업은 부산시와 해수부가 협력해 첨단 디지털·친환경 산업으로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
북극항로가 열린다고 부산이 곧바로 해양수도가 될 순 없다. 온갖 변수와 곡절이 도사리고 있다.
당장 해수부 부산 이전을 계기로 조선·해양플랜트 산업에 대한 관할권을 해수부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렇게 빗발쳤지만, 미국과의 관세 협상 막판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MASGA)’ 전략이 통하면서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과 조선을 동시에 관할하는 현재 시스템을 당장 바꾸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후에너지부 신설도 공약한 바 있어 산업부의 에너지 부문 분리 가능성도 높다. 산업부 전체의 기능 재편을 하려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얘기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 발표는 이달 중순께로 알려져 있다. 변화하는 상황에 맞는 추가 설득 논리와 단계별 전략을 가다듬어야 할 때다.
또 북극항로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과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 해제가 필수적인데, 끝날 듯하던 전쟁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세계 패권 구도 변동과 각국의 대응이 예측과 달리 돌아가는 경우는 다반사다.
따라서 헤양수도가 되려면 최소한 국내에서 만큼은 동남권 해양 도시들을 우군으로 품고, 그들의 요구까지 충분히 수렴해 국가 정책에 목소리를 낼 때 동남권 해안 지역을 이끌 리더십이 생길 것이다.
보여주기 식으로, 유행처럼 온갖 정책에 북극항로를 갖다붙일 일이 아니라, 부산이 전통 해양산업을 업그레이드 하듯, 동남권 각 지역 산업 역량을 스마트·친환경으로 업그레이드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을 부산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낼 때 국내에서 만큼은 해양수도 위상을 부여받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가면 환동해권을 기본으로 북극항로 개척 후 주요 교역 상대로 떠오를 북유럽, 중앙아시아 주요 도시들과도 도시 차원의 외교를 미리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실제 북극항로가 열리는 외부 환경 변화가 왔을 때 곧바로 성과를 나타낼 기반을 만드는 일이 지금 해양수도를 지향하는 부산이 시작해야 할 과제다.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