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아직은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다
최세헌 편집국 부국장
한미 관세협상 결과 ‘절반의 성공’
경제규모 고려하면 지나친 퍼주기
세제개편안은 증시 상승세에 찬물
정부 증시 부양 정책 일관성 결여
국민 기대 높은 새 정부 이제 시작
그에 걸맞은 능력과 신뢰 보여야
지난주를 달궜던 화두는 단연 한미 관세협상과 정부의 세제개편안이다.
우선 지난달 31일 극적 타결을 봤던 한미 관세협상은 한마디로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물론 이같은 평가는 새 정부의 첫 외교 시험대라는 경험 미숙과 정부를 구성한 지 채 얼마되지 않았다는 준비 부족, 현시점 우리나라의 국력 등을 십분 감안해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고위공직자 워크숍에서 “노심초사하고 정말 어려운 환경이었다. 나라의 국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협상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이 대통령의 하소연은 아쉽다.
우리나라가 힘을 키워야 한다는 진부한 표현은 말 그대로 진부하다. 미국 같은 세계 제1의 국가가 되지 않는 이상 모든 국가가 결국 무릎 꿇는 승자독식의 세계다. 자국 우선주의의 극치를 달리는 트럼프의 미국이 아니더라도 전 세계는 이미 각자도생의 시대에 들어섰다.
이 시점에 우리나라는 얼마나 힘을 더 키워야 한다는 걸까. 명목 GDP로 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는 세계 11위 수준이다. 현재 인구 등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가 세계 최상위권으로 올라가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특히 경제규모 세계 3위의 EU도, 세계 4위의 일본도 트럼프에게 굴복한 마당에 국력을 핑계 삼는 것은 현실 회피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위치는 이미 정해져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협상을 한다. ‘힘이 더 있었더라면’ 이라는 변명은 패배자의 자기 위로일 뿐이다.
8월 1일이라는 시간에 쫓겨 우리나라의 경제규모 2배를 넘는 일본과 비슷한 퍼주기를 한 것은 사실상 협상의 실패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를 감안할 때 너무 큰 규모이고, 향후 대기업의 미국 공장 신설과 이전으로 인해 국내 산업의 공동화가 심각하게 우려된다.
관세협상 기한을 넘기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할 뿐이다. 불확실성을 없앴다는 것에 협상의 성과를 부여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협상 비하인드로 쏟아져 나오는 정부의 자화자찬은 지나치다. 관세 협상 타결이라는 큰 호재에도 불구하고 이날 국내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였다는 점은 관세 협상 결과가 미흡했다는 또 다른 방증이기도 하다.
더 심각한 것은 사실 정부의 세제개편안이다.
관세 폭탄은 트럼프라는 특이한 캐릭터에 의해 전 세계가 눈물을 머금고 ‘삥’을 뜯기는, 대외적인 문제였다. 즉 우리나라만 피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관세 협상의 결과와 같은 날 발표된 세제개편안은 우리 정부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다. 계속 ‘설’로만 흘러나오다가 결국 정부 확정안으로 나온 세제개편안은 지난 1일 국내 증시를 폭락시켰다. 코스피는 이날 하루 만에 3.8%, 코스닥은 4% 하락했다.
증권거래세 인상,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기준 10억 원으로 강화,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의 세제개편안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냈다. 물론 그동안 코스피의 상승에 따른 피로감, 세계 증시의 조정기 등과 겹친 측면이 있지만, 세제개편안이 폭락의 트리거가 됐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국내 증시 투자자들의 실망을 넘어선 분노의 핵심은 정부의 정책 불신에 있다.
국내 증시는 올해 세계 상승률 1위를 기록할 만큼 가파르게 올랐다. 이는 이 대통령이 공약한 ‘코스피 5000 시대’에 기인한다.
자산이 부동산에 지나치게 몰린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배분 병폐를 없애기 위해 이 대통령은 증시 부양을 핵심 공약으로 잡았다. 이에 따른 상법 개정안 등은 증시에 불을 지폈다. ‘박스피’에 실망해 미국 증시에 투자했던 ‘서학개미’들도 많이 돌아왔고, 국내 주식 투자자들도 많이 늘었다. 국내 증시가 변했다고 보고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금액도 대폭 늘었다.
기업의 실적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닌데, 이 대통령의 증시 부양에 대한 강력한 의지, 즉 말만으로 이 모든 것들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이번 세제개편안은 정부의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집값을 잡기 위한 대체 수단으로 증시에 힘을 몰아준다고 했다면 그에 따른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돼야 함에도 그러지 못했다. 마치 코스피가 이미 5000이 된 것처럼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
이 대통령은 지난 6월 4일 취임해 임기를 시작한 지 불과 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내각조차 다 구성하지 못한 시기에 벌써부터 새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에 비해 새 정부는 국민의 기대치가 높다.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만큼 새 정부는 능력과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힘들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