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한여름 스키장에서 만난 베르비에 페스티벌
아트컨시어지 대표
스위스 그슈타드(Gstaad)와 베르비에(Verbier) 페스티벌 그리고 미국 콜로라도주의 애스펜(Aspen) 뮤직 페스티벌은 한여름 열리는 대표적인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세 곳 모두 스키 리조트에서 축제가 열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세계적인 겨울 리조트로 명성이 높은 곳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발고도가 높은 곳이라도 눈이 녹아내리는 여름의 경우 리조트의 좋은 숙소들은 유휴시설이 되고 만다. 스위스 발레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해발 1530m 베르비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세계 최고의 오프 피스트(Off-Piste), 오지 스키 리조트인 이곳에 음악 축제가 시작된 이유이다.
스웨덴 출신의 음악 기획자 마틴 엥스트롬(Martin Engstroem)이 베르비에 페스티벌 설립자 겸 예술감독을 맡아 30년 넘게 축제를 이끌고 있다. 그는 1989년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개관 당시 컨설턴트로 활약하면서 지휘자 정명훈이 예술감독으로 선임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후 파리를 떠나 소프라노인 아내 바바라 헨드릭스와 스위스로 이주하게 되었고, 3년의 준비 끝에 1994년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아카데미를 만들었다. 스위스 은행 UBS와 네슬레사의 후원을 받으며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 시킨다.
7월 중순에서 8월 초까지 20여 일간 펼쳐지는 축제의 메인 공연장은 축제 기간 설치되는 1400석 규모의 텐트 극장(Salle des Combin)과 400석 규모의 작은 교회(Eglise)에서 번갈아 공연된다. 스위스 산골 마을의 임시 공연장에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의 연주가 끊이지 않는 게 베르비에의 매력이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미샤 마이스키, 예프게니 키신 등이 해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주요 연주자들이다. 또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베르비에 페스티벌 오케스트라(VFO)가 호스트를 맡아 연주를 담당하고 있는 것 또한 매력이다. 샤를 뒤투아, 발레리 게르기예프 등의 마에스트로들이 지휘봉을 맡으며 최고의 협연자들과 함께 축제의 중심이 된다. 올해의 경우는 신예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임윤찬이 함께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 공연이 전체 프로그램 중 가장 먼저 매진되기도 하였다. 또한 마을 내 영화관과 호텔 라운지 등에서는 거장들과 아카데미 참가자들이 함께하는 마스터클래스가 펼쳐지는데,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바리톤 토마스 햄슨의 레슨을 일반인이 참관할 수 있는 것 또한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묘미이다.
화려한 축제극장이나 근사한 공연장, 베로나의 아레나와 같은 특별한 베뉴 없이도 차별된 기획과 프로그램으로 축제와 아카데미, 유휴시설 활용까지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필자가 손꼽는 한여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음악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