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살아남는 법, 그리고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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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김병우 감독 '전지적 독자 시점'
2억 뷰 웹소설 원작 판타지 영화
현실에까지 이어지는 성찰 남겨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전지적 독자 시점'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는 과연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과 끝없이 쌓이는 빚, 생활이라는 무거운 짐 아래서 꿈은 점점 빛을 잃어간다. 그런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숨을 죽이고, 마음속 깊은 곳에 쌓인 갈망을 묻어둬야만 했을까. 그런 순간, ‘독자’는 작은 빛을 찾아내듯 폰을 켜고, 자신만의 은신처인 웹소설 속 세계에 몸을 싣는다.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그의 삶은, 오직 그가 읽는 이야기 안에서만 반짝인다.

대부분의 웹소설이 그렇듯, 평범한 주인공은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현실의 냉혹한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그는 무수한 시련과 고통을 딛고 일어나 결국 세상의 중심으로 거듭난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단순한 희망을 넘어, 깊은 카타르시스라는 이름의 해방감을 경험하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결말이기에 더욱 그렇다.

김병우 감독의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은 누적 조회 수 2억의 동명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원작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력으로 삼아, 현실과 판타지 사이를 능숙하게 넘나들며 재미를 유발한다. 이때 영화는 장르 특유의 쾌감은 물론 현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질문들로 외연을 확장한다. 영화의 이야기는 주인공 ‘독자’(안효섭)가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더 많은 시대, 그는 정규직이 되지 못했음에도 별다른 저항 없이 묵묵히 짐을 챙긴다. 그런데 당장 다음 달 생활비조차 막막할 텐데, 독자는 지나치게 담담한 모습이라 오히려 이질적으로 보인다.

독자는 만원 지하철에서는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이를 먼저 챙기는 등 소위 말하는 ‘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그렇게 단순히 정의할 수 없다. 같은 날 정규직 전환에 실패한 동료 ‘상아’(채수빈)가 원치 않는 남자의 접근에 곤란해할 때, 독자는 그 상황을 지켜볼 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간신히 남자를 돌려보낸 상아에게 그는 그저 “잘 참았다”고 말한다. 독자는 눈앞에 놓인 임무는 묵묵히 수행하지만, 타인과의 충돌이나 감정적 개입은 철저히 피하려 한다. 그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인물인 것이다.

그의 무기력한 태도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무관하지 않다. 세상과 단절된 삶 속에서 그를 위로하는 것은 오직 하나, 10년간 연재된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연재 초기에는 인기작이었지만 세계관이 붕괴되는 등으로 조회 수는 1에 머문다. 즉 단 한 명이 읽는 소설이라는 뜻인데, 바로 그 한 명의 독자가 ‘독자’이다. 마지막 출근 날, 소설의 마지막 회가 연재되고, 그날 현실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독자의 눈앞에서 세상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 광경은 자신이 읽어온 소설 속 장면과 일치한다.

영화는 액션 판타지 장르답게 볼거리가 많지만 진짜 재미는 주인공이 맞닥뜨린 철학적 딜레마에서 비롯된다. 소설 속 주인공 ‘유중혁’(이민호)은 초인적인 전투 능력과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임무를 완수하고 멸망한 세계에서 홀로 살아남는다. 독자는 그런 중혁에게서 구원의 가능성을 보았지만, 타인을 구하지 않고 혼자 살아남는 결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피해자인 동시에 살아남기 위해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독자는 외로움과 절망, 고통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는 중혁의 모습에 공감하며 위로받았다. 그러나 현실에서 만난 중혁은 이타적인 영웅이 아니었다. 이제 소설의 미래를 알고 있는 독자는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혼자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동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통해 판타지를 넘어 현실에 묵직한 성찰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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