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녹(綠)의 미학
김상미 (1957~)
녹은 쓸쓸함의 색깔
염분 섞인 바람처럼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세상을 또박또박 걷던 내 발자국 소리가
어느 날 삐거덕 기우뚱해진 것도
녹 때문이다
내 몸과 마음에 슨 쓸쓸함이
자꾸만 커지는 그 쓸쓸함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건물에 스며드는 비처럼
아무리 굳센 내면으로도 감출 수 없는 나이처럼
녹은 쓸쓸함의 색깔
흐르는 시간의 사랑 제때 받지 못해
창백하게 굳어버린 공기
시집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2022) 중에서
쓸쓸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는지요. 그러나 미학은 아름다움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 그래서 시인의 쓸쓸함은 살아있음이 만들어준 아름다운 녹임을 노래합니다.
그 어떤 감정보다 무서운 쓸쓸함.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쓸 줄 알아야 하는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이 질병을 치료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쓸쓸함이라는 녹을 닦아낼 수 있는 연마제는 사랑뿐. 일상적인 대인 관계 안에서 인생을 배우는 것,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닦아가는 건 어떨까요.
삶의 모든 것을 부식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 순 없겠지만, 녹이 슨 철제 조형물이 주는 멋스러움처럼 쓸쓸한 마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벗처럼 동행해 본다면 그 또한 아름다움을 완성해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