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무늬만 실용주의 정부?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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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부장

이재명, 1월 "탈이념·탈진영"… 경제 우선
6개월후 재계 "기업 못해먹겠다" 목소리
대주주 압박, 법인세↑… 노란봉투법 강행
잇따른 발언 번복… 실용주의도 득표용?

지난 1월 대선을 앞두고 가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장. 이 대표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이라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이어 “기업 활동 장애를 최소화해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이 대표는 탄핵정국 속 조기대선이 거론될 즈음에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어서 덩샤오핑의 이른바 ‘흑묘백묘론’을 내걸며 중도층과 보수층 잡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흑묘백묘론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인민이 잘살면 그만’이라는 논리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는 중국이 경제발전론을 내걸며 G2 지위에까지 오르게 한 원동력이 됐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 발언들은 지켜지고 있을까. 당시 이 대표는 대선 후 대통령이 돼 실권자가 됐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기업 못해먹겠다”는 아우성이 재계 곳곳에서 들린다.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는 1차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이어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핵심인 2차 상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을 ‘초부자 감세’라고 비판하며 법인세 등 증세안도 검토하고 있다. 쟁의행위 범위 확대와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제한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노조법 개정(노란봉투법)까지 밀어부칠 태세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대출 억제, 재초환 규제 완화 무시 등으로 건설업계도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는 300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조사한 결과 전체의 약 80%가 2차 상법 개정 시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8단체도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1%포인트 인상하면 투자와 취업자가 장기적으로 각각 2.56%, 0.75% 감소한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도 있다. 경기침체에 따라 법인세 세수가 2년 사이 41조 원 급감한 상황에서 세율을 높이는 것은 시기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 같은 행보는 미국 정부의 자국 기업 보호 정책과 상반된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정부의 경우 전 세계 국가들 대상으로 미국 내 수입 제품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표한 뒤 국가별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미국 내 투자와 함께 농산물 시장 개방 등으로 미국에 화답하는 모양새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삼성, 현대차, SK 등 국내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관세 압박 등에 결국 일부 공장의 미국 내 이전, 공장 신설 등으로 약 100조 원 이상 투자에 나섰다. 한국 기업 입장에선 미국 정부 상대하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공세까지 방어를 해야 해 “못해먹겠다”는 소리가 그냥 나온다. 미국 투자 확대 시 한국 내 생산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 대상으로 압박하는 것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선 전통적 우호관계인 한미·한일 동맹의 강화가 우선인데 대선 이후 과정은 그렇지 못했다. 국무위원들도 반미, 미군철수 등을 외쳐온 국무총리, 노동부장관 등을 임명했다. 최근 정상회담 기피, 소극적 관세 협상 등 외교관계에서 미국의 계속된 한국정부 홀대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지향한다면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 기업들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치도록 세제 지원, 규제 철폐,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 최소화 등 친기업 정책을 펼쳐야 하고, 외교도 우리 기업과 국민에 어느 곳이 이익인지 잘 판단해서 대응을 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미 여러차례 발언 번복의 전력이 있는데 이를 기업이나 국민들이 액면대로 믿은 것부터가 잘못인지 모른다.

2018년 경기도지사 후보 시절에 ‘재벌갑질’을 비판하면서 해체해야 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러다 지난 3월에는 “재벌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면서 이재용 삼성 회장에게 “삼성이 잘돼야 대한민국이 잘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1년 12월 전북 전주 지역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선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도~”라고 말했다. 이후 다른 자리에선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고 꼬집었다. 이제 기업인들에게는 뭐라고 말할까. “실용주의 한다 했더니 진짜로 실용주의 하는 줄 알더라”라고 할까.


배동진 기자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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