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고요를 삼킨 폭풍 - 터너의 눈보라와 칸트의 숭고 미학
J.M.W. 터너(1775~1851)의 많은 작품에서 인간은 자연 앞에서 거의 사라질 듯한 존재로 등장한다. ‘눈보라: 항구 앞바다의 증기선’(1842)은 폭풍우에 휩쓸리면서 겨우 버티는 작은 증기선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은 예술사 전체를 통틀어 폭풍을 묘사한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 할 만하다. 캔버스는 눈보라와 폭풍우가 만들어내는 흰 소용돌이로 가득하다. 거센 눈과 바람이 뒤섞여 화면을 휩쓸고, 화면의 중심에는 폭풍우에 곧 삼켜질 듯한 증기선이 보인다. 이 배는 거의 가라앉기 직전의 흔적에 가깝다. 여기서 터너는 자연의 무지막지한 에너지 앞에 노출된 인간 문명의 무력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터너는 이 작품을 위해 직접 밧줄에 묶여 폭풍우 속 갑판에 서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의 진위와 관계없이 이 그림이 격변하는 폭풍의 중심에 있다는 체험을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터너의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없이 진실되다.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가 아니다. 이 그림은 인간의 감각을 초과하는 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심리적 체험, 곧 ‘숭고’를 그린 것이다. 이처럼 터너는 자연을 ‘장엄함’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정 능력을 초과하는 대상으로, 숭고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칸트에 따르면 숭고란 감각의 무능력(구상력의 실패)과 이성의 초월적 능력(정신의 승리)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주관이 느끼는 감정이다. 다시 말해 숭고는 말로 묘사하거나 그림으로 재현할 수 없는 대상에 마주해서, 우리는 한없이 왜소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그 무한성, 그 위력을 자각할 때 생기는 주관적 감정이다.
터너의 그림에서 우리는 자연을 인식하지 못한다. 눈과 안개, 바람과 파도는 어떤 구체적 형상도 허락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압도된다. 그러나 바로 그 감각의 실패 속에서, 우리 안의 이성은 자연을 뛰어넘는 인간 정신의 위엄을 느끼게 된다. 형상이 지워질 듯한 색의 소용돌이, 불안정한 지점과 공간 구성, 사물과 배경의 경계 붕괴 등 터너 그림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무엇을 보는가”보다 “무엇이 나를 덮치는가”를 경험하게 만든다. 이것은 압도-불가해-승화로 이어지는 미학적 흐름을 실현한다. ‘눈보라’는 바로 그 지점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회화다. 칸트의 말처럼 셀 수 없이 수많은 별로 뒤덮인 하늘, 온통 파괴력을 자랑하는 화산, 파도가 치솟는 끝없는 대양 등 자연은 우리의 구상력을 뛰어넘을 정도로 거대하고 위력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위대함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의 이러한 깨달음이야말로 숭고의 본질이다. 인간의 무력함을 응시하면서도, 그 응시 자체가 인간만의 능력임을 깨닫게 하는 회화. 이것이 터너가 우리에게 건네는 미학적 체험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