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이시바 총리의 ‘NO’ 발언과 미일 관세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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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이것은 국익을 건 싸움이다. 우리를 우습게 보지 마라.” “동맹국이라도 말할 것은 당당히 말해야 한다.” 2025년 7월 9일, 지바현 후나바시역 앞에서 열린 참의원 선거 유세 현장에서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미국을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4월 2일 일본에 대해 24%의 고율 관세 부과를 공식 발표한 데 이어 자동차 등 주요 품목을 포함한 패키지 협상이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7월 7일 오히려 25%로 상향된 관세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에 안전보장을 의지하고 미국과의 보조를 최우선시해 온 자민당 출신 총리가 공개적으로 미국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대내외의 이목이 집중됐다.

사실 ‘NO’라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본은 1968년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뒤, 1980년대 들어 미국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미국은 일본산 제품에 대해 관세·수입 규제를 강화했고 1985년에는 달러 약세와 엔고를 유도하는 플라자 합의를 추진했다. 이에 대응한 일본 정부의 저금리와 통화 팽창 정책은 자산 거품을 키웠다. 그리고 1990년대 초 이른바 ‘버블 경제’가 붕괴하면서 일본은 장기 불황의 늪에 빠지게 된다. 이 무렵 출간된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1989년)은 미국에 당당히 맞서자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압박이 1980년대와 2020년대 모두 자동차 산업을 겨냥했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1980년대의 NO가 자신감의 표현이었다면, 2025년 이시바의 NO는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함의 외침이라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NO 속에 성장기 일본과 쇠락기 일본이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협상 전 강경 발언으로 눈길

더는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함의 외침

최근 선거 참패에 사퇴 요구까지 거세

협상력 약화 우려 속 15% 관세 확정

일본의 대미 대응 한국에 시사점 던져

설득력 있는 입장 표명, 실리 외교 핵심

물론, 이시바 총리의 발언은 감정이 아닌 전략이었다. ‘국익을 지키는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통해 7월 20일 참의원 선거에서 반전을 노린 선택이었으며, 대미 순응이 오히려 국익을 해칠 수 있다는 외교 소신도 반영됐다. 실제로 그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대미 밀착 외교’를 비판하면서 대항마로 부상했으나, 자민당 총재 경선에서는 다섯 차례나 고배를 마셨고 아베 장기 집권하에 비주류로 밀려나 있었다. 그럼에도 2024년 10월 이시바가 총리에 취임할 수 있었던 것은 자민당 주요 파벌의 비자금 스캔들로 무너진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적임자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시바 체제 아래 실시된 지난해 2024년 10월 27일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과 공명당 연립 여당은 과반 의석(233석) 획득에 실패했다. 이에 따라 이번 7월 20일 참의원 선거는 자민당의 장기 집권과 이시바 총리 개인의 정치적 생존이 걸린 중대한 승부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패였다. 자민당은 전체 248석 중 97석, 연립 여당 공명당을 합쳐도 122석으로 과반(125석)에 미치지 못했다. 유권자들이 ‘강한 리더’보다 고물가·생활고를 해결할 ‘생활 밀착형 지도자’를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정계는 중·참 양원 모두에서 여소야대 국면에 돌입했고, 자민당 정권 유지 자체가 기로에 놓이게 됐다. 야당은 물론 자민당 내부에서도 ‘이시바 책임론’이 분출되며, 총리직 사퇴 요구가 거세졌다.

그럼에도 이시바는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관세협정을 반드시 책임지고 마무리하겠다”며 총리직 유지를 선언했다. 그는 4월부터 대미 협상을 주도해 온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을 중심으로 협상단을 워싱턴에 파견했다. 정권 불안정으로 협상력이 약화되었다는 우려 속에서도 제8차 고위급 협상에서 일본은 자동차 관세 해결, 농업 부문 보호, 대미 투자 확대라는 3대 원칙을 고수했다. 다음 날인 22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인하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는 일본의 5500억 달러 투자 약속과 8월 1일 관세 시한을 고려한 절충안으로 해석된다. 관세 인하 발표로 이시바 내각의 지지율은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협상 타결이 ‘국익 확보’로 이어진다면 이시바 총리의 리더십이 일정 부분 강화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민 신뢰를 상실한 지도자가 국정을 이끌어 간다는 것은 이시바 스스로 밝힌 표현처럼 ‘가시밭길’이 될 수밖에 없다.

이시바 총리의 NO 발언과 관세 협상 과정은 한국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에 무조건 순응하거나 정면으로 충돌하는 양자택일을 넘어서, 때에 따라서는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NO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지속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울러 외교적 성과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함으로써 외교와 정치의 선순환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재명 정부가 지향하는 실리 외교의 핵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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