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후쿠오카 공항이 부산에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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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삼미문화재단 이사장

리뉴얼한 공항에 담은 도시 정체성
신공항 조속 개항에만 몰두한 부산
지금부터 공항에 담을 것 고민해야

최근 여러가지 일 때문에 후쿠오카를 방문할 기회가 많이 있었다. 후쿠오카공항은 계속 확장 공사 중이었다. 좁고 단순한 입국장, 도시의 정체성이 느껴지지 않는 큰 특징 없는 지방 공항이었던 후쿠오카공항이 어떻게 변화할지 솔직히 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리뉴얼된 구역들이 차례로 공개되면서 공항은 완전히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새롭게 단장된 후쿠오카공항은 단순한 물리적 확장에 머물지 않고, 도시의 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담아낸 ‘경험형 공공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항 내부 곳곳에 후쿠오카 전통 직물인 하카타오리 패턴이 섬세하게 적용되었고, 지역 목공예 브랜드에서 제작한 가구들이 라운지와 대합실을 채워 공간의 미감을 높였다. 면세점 중심에는 전통 축제를 연상시키는 야구라(櫓) 구조물이 설치되어, 후쿠오카라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음식 공간이었다. 하카타 라멘, 명란젓, 모츠나베 등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향토 음식들이 입점해 있어, 방문객들이 공항에서 마지막 한 끼를 먹으며 자연스럽게 도시의 맛과 기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공간은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니라,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압축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문화적 무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후쿠오카공항은 건축 전문지와 SDGs 매거진 등에서 “도시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을 결합한 우수 공공디자인 사례”로 조명받았다. 일본 국내에서도 “공항만으로도 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다”는 방문객들의 평가가 이어진다. 공항 공간 자체가 도시를 대신해 말하고, 방문객과 도시를 연결하는 방식은 현재 공공시설 디자인에 요구되는 새로운 방향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부산 김해공항은 어떠한가. 김해공항은 오랫동안 동남권의 관문 역할을 해왔고, 최근 국제선 청사 확장 공사로 물리적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내부와 외부 공간 모두 부산다움을 담아내는 데는 크게 부족하다. 건물 외관은 단조롭고, 내부 공간은 기능 위주의 무채색 구성으로 지역 문화나 특색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부산은 단순한 해양 도시로 축소할 수 없는, 훨씬 더 입체적인 정체성을 가진 도시다. 예컨대 영도의 조선산업 유산,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모한 F1963, 그리고 다대포 해변의 일몰과 인근 갯마을이 어우러지는 자연과 도시의 교차 풍경 등은 부산을 구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다. 또한 부산 특유의 삶의 방식, 거리의 활기와 정중함, 시장의 생동감 등도 부산의 정서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런 다채로운 요소들을 김해공항 내외 공간에 녹여낼 필요가 있다.

공항은 도시를 대표하는 첫인상과 마지막 기억을 담당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재 김해공항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약 10년 정도 가덕신공항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김해공항이 부산을 상징하는 관문 역할을 계속해야 하기에, 지금부터라도 김해공항을 ‘부산다움 실험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푸드코트에는 단순 프랜차이즈가 아닌 부산 지역의 향토 음식과 로컬 브랜드가 입점할 수 있어야 하며, 부산을 상징하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패턴, 조형물 등이 설치될 필요가 있다. 도시의 색깔과 이야기를 담은 사소한 공간 요소 하나하나가 부산의 언어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김해공항을 넘어 가덕신공항의 기획 단계에서도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필수 원칙이 아닐까한다. 가덕신공항은 단순히 물류와 교통을 위한 대형 공항을 넘어서, 부산과 부울경의 철학, 기후, 역사, 문화를 담은 플랫폼형 공공공간으로 설계돼야 한다. 단지 몇 가지 디자인 요소를 덧붙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환대와 정체성을 실내외적으로 구현하는 미래형 공항이 되어야 한다.

현재 가덕신공항 착공이 지연되면서 언제 완공될지에 대한 관심에만 집중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떤 공항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설계가 디자인 초기 단계부터 면밀히 검토되지 않으면, 단순히 물리적 기능만 수행하는 테마 없는 공항이 될 위험이 크다.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가는 신공항이니 만큼, 지속가능하고 미래친화적인 공항 준비를 지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에너지 효율과 탄소중립 설계, 지역 문화와의 조화, 첨단 기술과 체험형 공간의 융합 등 부산의 모든 자산을 공항 공간에 녹여내야 한다.

공항은 도시의 처음과 마지막 얼굴이다. 하늘의 관문에 ‘부산다움’이 깃들 수 있도록, 부산은 지금부터 스스로의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도시를 잊게 하는 공항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하는 공항. 그 길만이 부산이 준비해야 할 진정한 미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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