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천동 골목 빵친구들, ‘빵타스틱’한 전국구의 꿈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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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가득한 빵타스틱 마켓 2회까지 성황
부산식 빵 문화 ‘빵초장’ 선봬 비상한 관심
서울 성수동 등 러브콜 교대로 진출가기로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부산에는 전국에서 유일한 빵의 천국 ‘빵천동’이 있다. 부산 수영구 남천동은 2010년대 중반부터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빵천동'이라는 맛있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아예 수영구가 나서서 빵천동 빵집 지도를 만들어 배포했고, 지금까지 수영구 홈페이지 등에서 당당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빵집 지도에 따르면 수영구의 빵집 밀집 지역은 부산도시철도 남천역 3번 출구~남천동 벚꽃 거리~수영로 464번길까지 약 4㎞ 구간이다. 2017년 당시 수영구에 있던 빵집 30곳을 수록했다. 2023년에는 남천동 빵집 골목상권을 배경으로 오래된 동네 빵집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웹드라마 ‘수영제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현재 수영구에는 빵을 판매하는 카페까지 포함하면 빵집이 무려 8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그동안 남천동에도 빵집들의 생멸이 숱하게 교차했지만, 갈수록 힘들어지는 자영업 환경 속에서도 빵천동의 명성은 건재하다고 하겠다.

전국 빵 마니아들의 ‘빵지 순례’ 명소로 명성을 이어오던 빵천동에 올해 들어 반가운 변화의 새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난 4월에 처음 열린 ‘빵타스틱 마켓 (PANTASTIC MARKET)’이 태풍의 눈인 셈이다. 빵타스틱 마켓은 골목 상권의 소규모 빵집뿐만아니라 언뜻 보기에 빵과는 무관해 보이는 식음료 업체까지 빵친구로 연결해 새로운 캐주얼 미식의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제1회 ‘빵타스틱 마켓’은 지난 4월 20일에 처음 열렸다. 빵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글자가 돋보이는 포스터와 색다른 행사 내용은 SNS에서 일찍부터 화제가 되었다. 1회 행사에는 듀스포레, 럭키 베이커리, 베이크웍스 같은 수영구 대표 베이커리와 일부 타 지역 베이커리를 포함해 디저트 브랜드, 커피 로스터리, 잼·청·샤퀴테리 등 30개 업체가 참여했다.

당시 빵타스틱 마켓은 빵을 깊이 있고 풍성하게 즐기도록 ‘취향 루트’로 구성한 점이 특색이었다. 자극 없이 부드럽고 순한 빵부터, 깊고 진한 풍미의 클래식한 빵, 식사가 되는 짭짤한 빵, 커피·수제 청·꿀 등 빵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만든 페어링까지 방문객들은 네 가지 루트를 따라 걸으며 자신의 빵 취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빵타스틱 마켓이 개최된 장소가 실외 골프연습장이라는 사실도 화제가 되었다. 이날 하루 영업을 쉰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는 야외의 그린 위에 돗자리가 깔리자 근사한 소풍 장소로 변신했다. 참가자들은 가까운 시내 골프장 위에서 나들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주최 측인 시선커뮤니케이션의 집계 결과 1회 행사의 방문객은 808명이고 참가한 소상공인 60명의 만족도도 80%로 매우 높았다. 무엇보다 실질적인 판매 성과로 이어졌다는 후문이었다.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첫 회 행사의 성공에 고무된 주최 측은 두 달 만인 지난달 22일 같은 장소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빵집, 전통주와 맥주 등 주류, 식재료,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까지 참가업체가 45곳에 달했다. 1회에 비해 50%나 늘어난 숫자였다. 사실 셀러들의 참가비가 저렴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아틀리에 스미다 김태희 대표는 “참가비가 너무 저렴해 왜 그렇게 운영하는지 물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먼저 친구를 만들려고 한다는 말이 너무 좋았다”라고 전했다. 참가업체들은 각자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빵타스틱 마켓 참가를 알렸다. 이들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모두 합치면 18만 5000명에 달했으니 ‘뭉치면 산다’는 말이 실감 났다.

첫회 때의 ‘취향 루트’는 2회부터 ‘소반 봄’ 박민영 대표의 제안으로 ‘빵초장’ 개념으로 한층 더 발전했다. 부산의 초장집 문화는 손님이 직접 수산시장에서 싱싱한 활어를 골라 구입한 뒤, 그 활어를 가지고 초장집으로 이동해 회를 뜨고 상차림과 매운탕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1980년대 초 수영구 민락항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초장집 문화는 부산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초장집 문화를 응용한 ‘빵초장’은 자기가 산 빵에다 마켓에서 파는 잼, 버터, 꿀, 시럽, 과일, 채소, 치즈, 사퀴테리, 오일 등 각종 재료를 올려서 어디서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맛있게 해주자는 개념이다.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예를 들어 소금빵과 기장 멸치로 만든 안초비 오일, 사워도우 빵과 대저 토마토 바질 페스토, 크루아상과 수제맥주, 통밀빵과 전통주의 결합 등이다. 이걸 ‘백방으로 수소문하다’는 표현에서 착안해 ‘100빵과 빵친구(곁들임 음식 혹은 음료와 주류)’라는 슬로건으로 내건 것이다. 빵을 주식으로 먹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빵집에서 와인은 물론이고 각종 소스, 크림, 치즈 등을 다 취급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제는 흩어져 있던 빵집과 빵친구들을 연결하는 빵타스틱 마켓 같은 플랫폼이 필요했던 것이다.

럭키베이커리 김아람 대표는 “상업적으로만 만드는 기획은 재미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반면에 빵타스틱 마켓은 너무 재밌는 기획이다. 이처럼 재미나게 할 수 있는 기획들이 있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참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부산대 사회학과 학생들이 골목 상권 협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빵타스틱 마켓에 참여해 직접 셀러들을 만나고 골목을 관찰하며 현장을 체험하는 기회를 가진 점도 의미가 적지 않다. 이들이 지역과 골목을 바라보는 시선은 부산을 떠나야겠다는 생각 대신 부산에서 뭔가를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지난달 22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 골프연습장 에브리싱글 골프앤라이프 에서 제2회 빵타스틱 마켓이 열리고 있다.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빵천동에서 열리는 빵타스틱 마켓과 빵친구들에 대한 관심은 이제 부산을 넘어설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8일 빵타스틱 마켓과 프로젝트 렌트가 서울 성동구 성수 산업혁신공간 ‘바스켓 성수’에서 개최한 ‘Bakeworks in Basket’ 팝업스토어가 그 시작이었다. 부산의 디저트 베이커리 베이크웍스와 부산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히떼로스터리, 베르크커피, 스트럿커피가 참가해 가지고 간 물량 전량 판매에 성공했다.

빵타스틱 마켓은 앞으로도 매달 한 번씩 부산 업체들을 교대로 서울 성수동에 올려보낼 생각이다. 또 빵타스틱 마켓에는 서울 한 대형 백화점의 협업 요청이 들어왔고, 부산관광공사는 관광 콘텐츠 파트너 후원 의사를 밝힌 상태다. 빵타스틱 마켓은 지역 소상공인에게 실질적인 판로를 제공하고 브랜드 홍보를 지원하기 위해 8월과 11월 등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빵타스틱 참가 업체 가운데 이미 서울에도 납품하고 있는 사워도우 빵의 선두 주자 ‘럭키베이커리’, 로컬 생산자 발굴에 앞장서고 있는 디저트 가게 ‘아틀리에 스미다’, 전통주를 수출하는 ‘꿀꺽하우스’, 독일이 고향인 맥주를 생산하지만 부산에서 향토기업으로 자리잡고 싶어하는 ‘툼브로이 주든’, 기장 멸치를 활용해 안초비를 만드는 ‘소반 봄’을 차례로 만나 그들의 이야기와 꿈에 대해 들었다.


제1회 빵타스틱 마켓 포스트.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제1회 빵타스틱 마켓 포스트. 시선커뮤니케이션 제공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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