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ank You for the Movie, 영화로 이어지는 아시아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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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원 영화의전당 홍보과장

성태원 영화의전당 홍보과장 성태원 영화의전당 홍보과장

부산아시아영화학교의 첫 학기 마지막 날, 교수는 아바의 곡 ‘Thank You for the Music’을 틀었다. 팍팍했던 수업과 과제를 버티며 지낸 학생들은 갑작스레 울려 퍼진 그 노래에 환호했고, 서로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췄다. 이 학교에는 흥미로운 전통이 하나 있다. 수업 전, 그리고 쉬는 시간, 각국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17개국에서 온 20명의 학생들이 돌아가며 자기 나라 음악을 소개한다. 필리핀의 비틀즈를 알게 되었고, 싱가포르와 홍콩 래퍼의 스웨그를 느꼈고, 키르기스스탄의 전통 선율과 현대 팝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곡에 매료되었다.

노래를 추천하는 친구들의 얼굴에는 자부심과 설렘이 서려 있었다. K-POP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전, ‘우리 음악도 해외에서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상상하던 그 시절 우리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음악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통로였다.

올해 3월, 부산 금련산 자락의 이 학교에 아시아 각국에서 모인 20명의 영화 인재들이 입학했다. 일본인 토모미와 몽골인 올길마는 무려 스무 살 차이가 나고, 인도와 파키스탄 출신 친구들은 누구보다도 절친이다. 미얀마에서 의학을 전공하다 영화로 진로를 바꾼 티파니, 베트남 갓 탤런트 톱4 출신의 가수 헤일리는 독특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인기 배우 마노즈는 부산 거리를 걷다 자국 팬들에게 종종 사진 요청을 받고, 그때마다 환한 미소로 응해준다.

말레이시아 최대 미디어 기업 출신 렘, 네팔 최초 아이폰 장편 영화를 연출한 제이슨, 태국에서 영화 작가를 꿈꾸는 붐까지 각자의 이력과 열정을 품은 이들은 서로 경쟁자가 아닌 동료다. 여기에는 세대도, 국경도, 종교도, 정치도 없다. 오직 영화와 음악으로 연결된 우리만 있다.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영화산업은 지금, 커다란 격랑 속에 있다. OTT 플랫폼의 급성장으로 기존 극장 중심의 산업은 침체에 빠진 반면, 콘텐츠 경쟁은 과열되었다. 제작비는 치솟고, 불확실성은 커졌으며, 대형 극장 기업들은 생존을 위한 합병을 추진 중이다. 한편에선 원천 IP를 확보하려는 전쟁도 치열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여러 대안 중 하나가 바로 국제공동제작이 아닐까? 아시아에는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 정서에서 비롯된 무수한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서로 다른 시선과 감각을 지닌 창작자들이 협업한다면, 그 결과물은 더 풍성하고 입체적인 서사를 품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국제 공동제작은 제작비 분산을 통한 리스크 완화, 다양한 국가의 투자 유치, 그리고 보다 넓은 시장 접근이라는 현실적인 장점도 가지고 있다.

물론 국제 공동제작이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창작자 간의 협업뿐 아니라, 관련 제도와 정책의 지원도 함께 고려될 필요가 있다. 국가 및 지방 차원에서의 정책적 관심과 적절한 예산 지원이 조금씩 확대된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동제작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법률·제도 정비와 아시아 각국의 환경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 양성도 앞으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아울러, 시민들의 영화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국제 공동제작의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산은 아시아 각국과의 교류 경험과 인프라를 바탕으로, 국제 공동제작을 꾸준히 준비해 나갈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가고 있다.

영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서로 다른 언어와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 얼마 전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던 갈등과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새 대통령은 ‘통합’을 약속했다. 그리고 시대는 지금,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함께 살아갈 방법을 요구하고 있다. 그 시작은 ‘이해’다. 그리고 영화는 그 이해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부산에서 시작된 특별한 배움의 여정은, 영화가 세대와 국경, 언어와 문화의 차이를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국제 공동제작은 어쩌면 산업적 선택을 넘어,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기 위한 대안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Thank you for th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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