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인생
강은교(1945~)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 살아도 이렇게 살게 될 거야
스무 살에 연애를 하고
둬번쯤 긴 키스를 꿈꾸다가
사소한지 모르는 결혼을 하고
사소한지 모르는 이별을 하고
헐떡헐떡 뛰어가 버스를 타고
잠시 숨을 멈추는 동안
사소하고 사소하게 정찰표를 들여다보네
하루에도 몇 번씩 엘리베이터로 승천을 하고
에스컬레이터로 세상을 굽어보며
내가 종족의 한 명임을 짐작하네
문득 별이 가까이 오는 저녁이면
뉴스를 보며 내가 그 여러 통계의 하나임을 실감하고
사소하고 사소하게 잠드네
그리고
사소하고 사소하게 꿈의 피켓을 드네
인생이여, 내가 간다고
그 여자는 소리쳤다
-시집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 (2024) 중에서
삶을 지긋이 바라보며, 어루만지던 시인이 인생을 사소하고 사소한 것이라 전합니다. 보잘것없는 인생.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사는 제게 사는 게 뭔지 한 수 일러줍니다. 다시 살아도 정말 이렇게 살게 될까 하는 생각도 잠시, 사소하게 여겨지는 날들을 귀하게 여겨보려 합니다. 그래서 “인생이여, 내가 간다”는 외침에 힘을 내어봅니다. 엇비슷 사는 것 같지만 같은 인생 없고,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라는 것. 그 어떤 삶에도 모범 답안 같은 것 없을테니 주어진 지금을 잘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생의 진경이 아닐까 싶습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