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유튜버' 생태계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지난 2022년 5월을 전후로 대한민국이 사실상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으면서 억눌렸던 여행 관련 수요가 큰 회복세를 보였다. 이에 맞춰 방송가에서는 해외 여행을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 제작이 다시 활발해졌다. 특히 과거처럼 연예인들이 유명 관광지를 방문해 감탄하는 장면만 보여주기보단, 낯선 해외 지역을 찾아 현지 주민들과 밀착해 살아보거나 실제 생활을 간접 체험하는 모습까지 함께 담아내는 형태로 진화했다.
여기에 이미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빠니보틀, 곽튜브, 원지의하루 같은 ‘여행 유튜버’ 출연이 두드러진다. 현재 방영 중인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지구마불 세계여행’ 등에서 이들은 선배 여행자로서 현지인과의 소통을 도와주며 꾸미지 않은 여행의 현실감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일반 시청자 입장에서는 여행에 공감하고 몰입할만한 지점을 찾아내는 데 탁월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코로나19 유행 이전부터 활동하면서 이른바 ‘1세대 여행 유튜버’로 불려온 이들은 지금은 각자 243만, 208만, 10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업계 큰손’이다. 사실상 ‘인플루언서’로서 현실 공간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종종 화제가 된다. 이들의 캐릭터에 주목한 타 방송사에서는 여행이 아닌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자나 버라이어티 쇼 출연자로 이들을 섭외하는 등 요즘은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인기 유튜버의 수익이 상당한 수준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는 이들을 ‘롤 모델’ 삼아 여행 글쓰기가 아닌 브이로그 제작으로 방향을 튼 사람들도 우후죽순 늘어났다. 기술 발전으로 진입 장벽이 낮아진 뒤로는 “한국에서만 여행 유튜버가 1만여 명”이라는 농담도 돈다. 이런 ‘레드오션’ 생태계에서 단기간에 1만 명의 구독자를 모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최근 구독자 60만 명을 넘어선 ‘서재로36‘의 콘텐츠는 소위 ‘폼 미쳤다(퍼포먼스가 좋다)’는 말이 나올만큼 인상적이다.
영상을 보기 전에는 먼저 시선을 끄는 다소 자극적인 섬네일(대표 이미지)에 걱정이 들지만, 막상 보고 있으면 다큐멘터리처럼 잔잔한 분위기 속에 여행 자체를 즐기는 사람의 개성이 은은하게 묻어나는 반전이 있다. 다른 유튜버들이 잘 다루지 않는 극한 지역에 가거나 홍콩, 일본, 몰디브 같은 잘 알려진 여행지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독특한 주제 선정도 특징이다.
주소지에서 활동명을 따온 서재로36은 2023년 초 세계일주를 시작한 뒤 약 1년 만에 10만 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이어 지난해 2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알려진 아프리카 중부 ‘부룬디’를 방문한 영상이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을 타면서 본격적인 성장세에 올랐고, 최근 1년 사이에 구독자 50만 명을 더 끌어모았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