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앞뒤가 안 맞는 대선 공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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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수도권과 비수도권 표심 노릴 목적에
지역 균형발전·서울 재개발 동시 약속
반발 두려워하면 정책 결정 모순 초래

정치는 한정된 사회적 자원 배분 행위
선심성 공약 반복 땐 사회 변화 어려워
구조적 배분 집중 용기 있는 결단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책사’로 불리는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은 얼마 전 큰 곤욕을 치렀다. 블랙록, 시타델 등 주요 자산운용사 및 헤지펀드 대표 15명과의 회의에서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미국 채권시장이 크게 흔들렸던 사실을 해명하려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자리는 미란의 역량에 대한 참석자들의 의문만 커지게 했다. 그가 추구하는 정책 방향이 앞뒤가 안 맞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무역·통화 정책은 스티븐 미란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인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가이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를 토대로 한다. 이른바 ‘미란 보고서’로도 불리는 이 보고서에는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제조업을 부흥하기 위한 그의 아이디어가 담겼다. 그는 자국 제조업을 무너뜨리고 무역적자를 심화시킨 주범으로 ‘강(强)달러’를 지목했다. 달러가 강하면 미국의 수출품 가격은 상대적으로 오른다. 반면 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 가격은 내려간다. 수입품의 매력이 커지니 무역적자가 심화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란은 달러를 약세로 만들어 자국 수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관세를 인상해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트럼프의 목표는 만성적인 무역·재정 적자를 줄이고 제조업을 되살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물가도 안정시켜야 한다. 그의 핵심 지지층인 블루칼라 노동자, 서민층을 위해서다. 이들은 지난 수십 년간 진행된 세계화로 제조업이 쇠퇴하며 일자리를 잃었고, 팬데믹 당시 가파르게 치솟은 물가로 생계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안타깝게도 트럼프가 주어진 과제를 온전히 달성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목표들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관세를 인상하면 자국 제조업은 보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만큼 수입품 가격이 올라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1인당 GDP가 8만 달러가 넘는 미국에서 대체품을 생산하는 것도 무리다. 약(弱)달러도 마찬가지다. 달러가 약해지면 수출 경쟁력은 높아지겠으나 수입 물가가 오르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제조업 기업과 소비자, 어느 한쪽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흔히 정치를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자원은 한정적이기에 정책 결정권자들은 우선순위를 짜고 중요한 걸 먼저 선택한다. 그 과정은 거센 반발을 동반한다. 욕먹는 게 두렵다고 이것저것 다 약속하다 보면 트럼프와 미란처럼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수도권 표심도 잡아야 하고, 비수도권 표심도 잡아야 하는 대선 후보들이 지금 그 상황에 놓였다.

후보들은 하나 같이 균형 발전을 외친다. 동시에 수도권 확장 정책을 꺼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서울 재개발 조건 완화 및 용적률 상향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GTX 노선 연장·확대는 이 후보와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모두 약속한 사안이다. 수도권의 극심한 주거·교통난을 해소하자는 측면이 있지만 이들 정책은 균형 발전이라는 과제와 배치된다. 용적률을 높여 주택이 늘어나면 더 많은 사람이 ‘똘똘한 한 채’를 찾아 서울로 몰릴 것이고, GTX 노선이 연장되는 만큼 서울 일자리가 갖는 매력도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팽창을 도모하는 정책과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가치는 양립하기 어렵다. 결국 중앙에 집중된 자원을 나눠야만 하는데, 정치인들은 전체 50%를 넘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표를 의식하여 이런 일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여기저기 남발되는 선심성 공약이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약들이 반복되는 건 차라리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게 반대에 부딪히는 것보단 득표에 도움이 되어서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자들이 표 떨어지는 불편한 선택을 하기 싫다고 서로 충돌하는 목표를 동시에 내걸면, 세상은 흘러온 대로 흘러갈 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그 폐해는 양쪽 국민 모두에게 돌아간다. 반발이 두렵다고 ‘구조적 배분’을 외면하는 정치인들의 미필적 고의를 방관해선 안 되는 이유다.

요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라는 표현이 자주 보인다. 형용모순이라는 의미다. 현실에서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없다. 우리는 아메리카노를 마실 때 뜨거운 걸로 마실지 차가운 걸로 마실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둘 다 마시고 싶다고 양쪽을 섞었다간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될 뿐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 그렇다. 수도권 팽창을 보조하면서 지역의 발전도 도모할 순 없다. 반대를 무릅쓰고 많은 공공기관을 지역으로 이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용기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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