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해수부 부산 이전, 해양 전략 대전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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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철 부경대 토목공학과 교수, 전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

정부 청사 하나 옮기는 지역 사안 아냐
글로벌 해양 강국 도약 위한 국가 전략

해양 금융·보험·법률 서비스 집적해야
고부가 산업 생태계로 경쟁력 극대화

신공항·북항 재개발 맞물려 ‘퀀텀 점프’
부산에서 그려야 할 국가 미래 청사진

지금 세계는 ‘바다의 미래’를 놓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북극항로의 열림, 자율운항선박의 등장, 해양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의 생존과 번영이 걸린 전략적 패권 다툼의 최전선에 있다. 주요 해양 강국들은 이미 행정, 산업, 연구개발(R&D) 역량을 해양수도에 집결시킨 강력한 ‘클러스터’를 구축하며 미래를 선점하려 질주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해양 정책 중추인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는 현재 행정 중심 도시인 세종시에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급변하는 해양 환경과 산업 현장의 역동성을 정책에 즉각적으로 반영하고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데 구조적인 한계를 낳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으로 이어진다.

최근 조기 대선 국면과 맞물려 해수부의 부산 이전 논의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정부 청사 하나를 옮기는 지역적 사안으로 치부한다면, 우리는 다가올 거대한 기회를 놓치고 국가적 위기를 자초하게 될 것이다. 해수부 이전은 지역 이기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해양 백년대계를 바로 세우고 글로벌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가 전략의 재배치’이고,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명령이다.

해수부 이전의 최적지로서 부산이 가지는 당위성은 여러 지표를 통해 이미 충분히 확인된다. 따라서 이제 논의의 초점은 ‘왜 부산인가’라는 물음을 넘어, 부산이라는 지리적 강점을 활용하여 어떻게 국가 해양 경쟁력을 극대화할 것인가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은 환적 물동량 기준 세계 2위를 자랑하는 항만이며, 연간 2천만 TEU 이상을 처리하는 세계 7위 컨테이너 항만으로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제1의 항만도시다. 단순한 물류 거점을 넘어, 국립부경대학교와 한국해양대학교 등 해양 인재 양성 요람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한국해양진흥공사(KOBC), 국립해양조사원 등 핵심 연구·공공기관이 밀집한, 국내 유일의 ‘해양 지식·산업 융합 벨트’다. 정책 수립과 집행, 연구개발, 인력 양성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생태계가 이미 부산에 갖춰져 있는 것이다. 해수부가 이곳에서 현장과 함께 호흡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 해양 정책은 현장성과 역동성을 갖추며 세계와 경쟁할 동력을 얻게 된다.

일각의 ‘지역 균형 발전 저해’ 우려는 해양산업의 본질과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한 단견이다. 해수부는 서류상의 정책 기획을 넘어, 해운·항만·수산·조선·해양과학기술 등 광범위한 실물 경제 현장을 지휘하고 지원하는 야전 사령부와 같다. 사령부가 최전선이자 심장부인 부산에 위치해야만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녹여내고, 변화하는 조류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진정한 국가 균형 발전은 핵심 거점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데서 시작된다. 인천, 평택·당진, 광양, 목포, 울산 등 전국의 주요 항만과 지방해양수산청의 기능과 역할을 오히려 강화하고, 부산의 중앙 본부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and-Spoke)’ 방식의 국가 해양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국가 전체의 공동 이익을 확대하는 상생의 길이다.

해수부 이전은 시작일 뿐, 단순히 청사 하나를 옮기는 것을 넘어, 부산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해양수도’로 만들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가 함께 추진되어야 한다. 해양 관련 금융·보험·법률 서비스를 집적하고, 국제적인 해운거래소를 설립하여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또한, 해양 분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해사법원을 신설하여 국제적 신뢰도를 높이고 고부가가치 해양 서비스 산업 생태계를 완성해야 한다. 나아가, 해양 신산업 R&D 허브 구축, 해양 스타트업 육성, 관련 국제기구 유치 등을 통해 정책·산업·금융·법률·연구가 융합된 ‘글로벌 수준의 해양 혁신 클러스터’를 완성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부산에서 그려야 할 국가 미래 청사진이다.

산업은행 본사 이전 추진, 가덕도 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등 부산의 미래 비전과 맞물려 해수부 이전은 단순한 행정 개편이 아닌, 대한민국 해양력 강화의 ‘퀀텀 점프’를 이루어낼 결정적 촉매제가 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내륙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해양 지향적인 국가 전략으로 대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다.

태평양과 인도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한 대한민국에게 해양 경쟁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은 특정 지역을 위한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열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적 투자이다. 이제 결단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해양 시계는 지금, 부산을 향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를 넘어, 미래 세대에게 풍요로운 바다를 물려주기 위한 책임 있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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