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트럼프 말하길
조영미 정치부 기자
그의 말 한마디는 전 세계 주요 언론사의 기사가 된다. 그게 단순한 농담이거나 ‘헛소리’라고 할지라도. 여기서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매일 아침 엄청나게 쌓여 있는 외신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일어난다. 최근 두 달 남짓 동안 못 해도 이메일로 받은 뉴스의 절반 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따른 기사였다. 대부분 이런 기사의 제목은 “트럼프가 말하길”(Trump says)로 시작한다. “트럼프가 말하길, 앨커트래즈 교도소를 다시 열 것이다”(5일), “트럼프는 경제 상황은 바이든 탓이라고 말하지만, 기업과 경제계는 동의하지 않는다”(2일) 같은 종류다.
최근에는 “교황으로 선출되고 싶다”는 농담인지 진짜인지 모를 발언을 해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처음에는 다들 짓궂은 농담이라고 생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은 교황 옷을 입은 모습으로 합성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SNS에 올렸다.
최근 전 세계를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관세 전쟁’을 두고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은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는 협상 가능하지만, 중국에는 145% 초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가, 바로 다음 날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매우 똑똑한 사람이고, 그는 내 친구다”며 “협상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고 달랜다. 그의 말 한마디로 뉴욕 증시는 급락했다가, 다시 치솟는다. 촘촘히 연결된 세계 금융시장도 마찬가지다.
국제 뉴스를 다루는 기자로서 종잡을 수 없는 그의 발언에 전날 썼던 기사와 정반대되는 내용의 기사를 다음 날 쓰면서 허탈할 때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면에 쓸 외신 사진을 검색하다가 눈에 들어오는 사진이 있었다.
영국 런던의 한 벽면에 그려진 아트 작품이었다. 누가 그렸는지는 모르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 수장들과 주요 인물을 과장되게 그리고 그에 따른 설명을 붙인 풍자화(2025년 3월 25일 자 12면 보도)였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뱅크시의 나라답게 작품은 위트가 넘쳤다.
그 작품에 묘사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랬다. 왕관을 쓴 트럼프 대통령 밑에는 ‘거짓말하는 왕’(LYIN’ KING), 원숭이처럼 묘사한 모습 밑에는 ‘초거대 일진’(XL BULLY) 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가 마치 왕이 된 것처럼 국정을 주무르고, 누가 되었든 약자라면 공격하고 혐오하는 일진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꼬집었다.
지난 2월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그런 ‘초거대 일진’ 행동의 절정이었다. 말이 대화지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격하며 설전을 벌이는 모습이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보수 매체 기자가 정장을 입고 있지 않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놓고 조롱하는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 되는 참사도 벌어졌다.
다행히 지난달 프란치스코 교황 장례식에서 마주 앉은 두 정상은 15분간 대화한 끝에, 광물 협상을 마무리하고 평화를 위해 한 발자국 나아갔다. 결국 필요했던 것은 ‘보여주기식 대화’가 아니라 ‘진정한 대화’였다.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혐오와 조롱보다는 진정성이 담긴 목소리를 내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