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않는 민주주의가 밤새 눈 시퍼렇게 뜨고 있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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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는 시민들의 힘

국회서 계엄군 맞선 의원 보좌진
계엄 막자며 현장 달려온 시민들
SNS로 소식 나르며 언론 역할도
유혈 사태 없어 성숙한 의식 빛나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계엄 해제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계엄 해제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의 기습적인 비상계엄령 앞에서 ‘1980년대 회귀’를 막아낸 것은 시민의 힘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 앞에 집결한 시민들은 군경 차량을 몸으로 막아냈고 국회 보좌진들은 계엄군 진입을 막았다. 계엄령 선포부터 계엄령 해제까지 긴박했던 전 과정은 SNS를 통해 전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지난 3일 오후 10시 24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면서 국회 앞은 순식간에 몰려든 국민들로 가득 찼다. 그 모습은 생중계 영상으로 실시간 공유되고, SNS 등에는 “지금 국회로 와 달라”는 게시 글이 이어졌다. 새벽 늦게까지 국회 앞에서 “계엄 해제”를 부르던 시민들은 계엄 해제 요구안이 통과되고 나서도 국회를 떠나지 않고 “윤석열 탄핵” 등 구호를 외치며 자리를 지켰다.

SNS에 접속한 시민들은 비상계엄 근거 관련 헌법 제 77조를 공유하며 계엄령을 해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계엄군이 국회 본청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을 보고 ‘인간 바리케이드’ 역할을 자처한 이들은 국회 보좌진과 직원들이었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이석재 보좌진은 “이번 사태를 겪으며 현 민주주의의 현장을 온몸으로 경험했다”며 “선거 과정을 거쳐도 그른 결정을 하는 지도자를 선출할 수 있고 그러한 판단을 국회의 정당한 절차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힘을 얻었다”는 감사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8세 아이를 둔 한미영(43·수영구 광안동) 씨는 “어릴 적 아버지에게 전해 들었던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을 이 시대에서 보고 아들에게 직접 설명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조마조마하게 새벽 늦게까지 생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국회 앞에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거주하는 엄아영(28) 씨는 “비상계엄 전 과정을 밤새 라이브로 계속 지켜보면서 이러다 영화 ‘서울의 봄’이 현실화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며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국회에서 서둘러 계엄을 해제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X(옛 트위터)에서 한 누리꾼은 “국회로 들어온 계엄군 차량을 온몸으로 막은 시민들이 민주주의 방패였다”며 “이들의 용기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고 전했다. 한 일본인 누리꾼은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지키려고 하는 모습이 와닿아서 울컥했다”는 글을 남겼다.

1980년대 유혈 사태를 경험했던 시민들은 과거 트라우마를 떠올렸다. 부산 시민 윤성운(73·수영구 민락동) 씨는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장면을 보니 과거가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다”며 “평생 다시는 보지 못할 장면인 줄 알았는데 계엄 선포 소식을 듣고 영상을 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유혈 사태 없이 마무리되고 가짜 뉴스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이어진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증명한 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날 새벽 SNS 등에는 장갑차 합성 사진과 야간 통행금지 속보 등을 포함한 가짜 뉴스도 퍼지면서 한때 불안감이 고조됐으나, 시민들은 가짜 뉴스에 대한 사실 확인을 정리한 게시 글 등을 공유하며 유언비어를 자체적으로 경계했다.

계엄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도 시민들은 “밀지 마” 등을 외쳤고, 철수하는 군인들에게도 고생했다며 박수로 배웅하는 모습도 있었다.

명지대 신율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계엄군이 국회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에서 계엄령 경험이 있는 우리 국민들은 과거 광주민주항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민주주의의 기본인 법치가 어그러지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2010년 아랍의 봄 시위에서 SNS가 시민 집결의 매개체가 됐듯, 이번 사태에서도 SNS와 생중계 영상 등을 통한 빠른 정보 공유가 시민들에게 정확한 상황을 인식하게 하고 유혈 사태 등 극단적 상황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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