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부산·경남 행정통합 재추진의 현실과 조건
압도적 찬성 여론 바탕 정부·정치권 압박해야 가능성
통합 재추진 선언 불구 난제는 산적
첫 관문인 주민 동의에 사활 걸어야
무조건 여론 지지 높게 나와야 승산
순조로운 정부 권한 이양에도 영향
메가시티 좌초 트라우마 극복 급선무
지역민 의구심 해소 위한 노력도 부족
대구·경북과 달리 통합 시점 못 정해
내후년 지방선거 종속변수 시각 경계
전국 곳곳에서 행정통합의 바람이 또 거세게 불고 있다. 국가적 화두가 된 수도권 일극 체제의 타파를 위한 방안으로 광역지자체 간 행정통합이 떠오르면서 여기저기서 관련 논의가 활발하다. ‘부울경 특별연합(메가시티)’ 무산의 쓰라린 기억이 있는 부산시와 경남도 역시 최근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통합 추진에 자극받아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두 지자체는 공론화위원회까지 출범시키며 통합 의지를 과시했지만 실질적인 통합 여부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울산을 제외하고 행정통합 재추진에 나선 부산·경남의 승부수가 과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그 조건과 변수를 살펴본다.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출범
부산·경남의 행정통합 재추진은 올해 6월 17일 박형준 부산시장과 박완수 경남지사가 부산시청에서 만나 ‘미래 도약과 상생 발전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다시 공식화됐다. 두 단체장은 이후 연내에 행정통합을 위한 공론화위원회 발족을 약속했는데, 이에 따라 지난 8일 공론화위원회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더불어 ‘부산·경남 행정통합 기본구상 초안’도 함께 내놨다. 통합 지향점은 ‘대한민국 경제수도’, 방향은 주민 의사를 최우선으로 하는 ‘상향식 통합’으로 정했다.
행정통합 기본구상 초안으로는 우선 두 가지의 ‘계층제’ 방식이 제시됐다. 광역 단위인 도와 시를 폐지하고 새로운 통합 지방정부를 설치하는 ‘2계층제’와 반대로 도와 시는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이를 관할하는 상위 지방정부인 ‘준주(準州)’를 설치하는 ‘3계층제’ 모델이다. 두 모델 모두 혼란을 최소화하고 통합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방식이지만 기초지자체와 광역지자체, 상위 지방정부인 준주 간 권한과 책임의 분배에 있어서 여전히 많은 부분이 모호해 적잖은 변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12월까지 권역별 토론회, 전문가 토론회, 여론조사 등을 거쳐 행정통합 최종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공론화위원회가 어떤 최적의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전제 조건은 압도적 주민 동의
경제수도 비전과 지역균형발전 필요성 등 온갖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부산·경남의 행정통합 재추진의 최고 관건은 압도적인 주민 동의와 정부 협조에 달려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첫 관문은 부산시민과 경남도민의 통합에 대한 여론 확인이다. 공론화위원회는 내년 상반기 중 여론조사로 이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서 양 지역민의 찬성 의견이 높게 나오면 통합 특별법 제정 등을 비롯해 구체적인 통합 시점의 윤곽도 드러나면서 전체 추진 과정에 속도가 붙게 된다. 핵심은 찬성 여론이 우세해도 압도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이후 절차인 행정통합특별법 제정을 포함해 통합 지방정부에 필수적인 자치입법권 등 5개 분야 20개 특례와 관련된 정부 권한의 대폭적인 이양 요구에 힘이 실린다. 높은 찬성 여론은 당연히 여야 정치권에도 적잖은 압박 요인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찬반 여론이 비슷하거나, 혹 반대가 더 많다면 통합 재추진은 동력을 잃게 되고 행정력 낭비 등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관심도 크게 떨어지면서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공론화위원회는 초기부터 찬성 여론을 어떻게 끌어올릴지 모든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통합에 대한 긍정적인 여론은 이미 지난해에도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돼, 이번 재추진 과정에서도 최대 난제로 꼽힌다. 지난해 7월 부산시와 경남도의 발표를 보면 양 지역민의 69.4%는 행정통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행정통합 자체에 대해서도 반대 의견(45.6%)이 찬성(35.6%)보다 높았다. 반대 이유로는 ‘통합의 필요성이나 당위성이 적다(50.5%)’가 절반을 넘었다. 불과 1년여 전의 주민 여론이지만 재추진을 선언한 지금이라고 해서 별반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주민 인식과 여론 변화를 위한 양 시도의 구체적인 노력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행정통합 재추진도 그 출발 여건은 그리 우호적인 게 아닌 셈이다.
정부의 권한 이양도 관건
압도적인 주민 찬성 이후에는 정부의 협조 여부가 또 관건이다. 공론화위원회가 통합 지방정부에 필수적이라고 꼽은 자치행정·입법권, 자치재정·조세권, 경제·산업육성권, 국토이용·관리권, 교육·치안·복지권의 5대 분야는 정부가 자기 권한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어서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현 정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통합 지방정부에 전폭적인 지원을 밝히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권한을 쥐고 있는 중앙정부 부처 관료들의 속마음은 이와 다를 수 있어 결코 정부 권한의 순조로운 이양을 장담할 수 없다. 특별법 제정으로 실질적인 권한 이양을 강제해야 하지만 현재 국회 내 여야의 권력 구조상 이를 보장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역시 최종적으로는 지역민의 압도적인 찬성 여부에 따라 그 향방이 갈릴 것이다.
메가시티 트라우마와 선거 변수
부산·경남 행정통합 재추진 소식을 들은 지역민이라면 누구라도 2년 전 부울경 특별연합, 즉 메가시티 좌초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2023년 1월 공식 출범을 눈앞에 뒀던 메가시티가 5년간의 노력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 모습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이유야 어쨌든 메가시티를 말짱 도루묵으로 만들었던 당사자들이 다시 행정통합을 추진한다며 공론화위원회까지 출범시켰으니 언뜻 지역민들도 다소 혼란스러울 듯하다.
아마도 행정통합 재추진의 실질적인 시작은 메가시티 트라우마의 극복과 연결돼 있다고 여겨진다. 공론화위원회가 내년 말까지 최종 통합안을 내놓는다고 해도 이 부분이 극복되지 않는다면 지역민의 마음속에 예전 트라우마는 언제든지 또 나타날 수 있다. 통합에 대한 의구심이나 열패감을 늘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면 이번 시도 역시 두 광역지자체장의 ‘정치쇼’의 일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안 그래도 부산시와 경남도는 언제까지 통합을 완료하겠다는 시점을 못 박지 않았다. 주민 동의가 중요한 만큼 이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대구시와 경북도는 2026년 7월 1일 출범을 목표로 통합을 추진 중이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 2026년 6월 3일임을 감안해 통합 지방정부의 출범 시한을 정한 것이다.
물론 어느 쪽이 바람직한지 명쾌하게 구분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대구·경북과 비교해 완료 시점을 특정하지 못한 부산·경남은 통합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이 다소 약한 게 아니냐는 생각은 숨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왕 시작한 통합 재추진이 행여 2026년 지방선거의 정치적 종속 변수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