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일필일침] BIFF '서른 즈음에' 길을 묻다
논설위원
부산국제영화제 내년 30번째 맞아
새 30년 준비하는 출발점으로 중요
타 장르 연계·주변 공간 이용 등 절실
서펜타인 파빌리온 사례 응용할 만
수영강·나루공원 활용 관심 높여야
융복합 통해 문화의 바다로 나아가길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속엔/ 더 아무것도 찾을 수 없네.’ 30년 전에 발매된 가수 김광석의 4집 앨범 수록곡 ‘서른 즈음에’의 가사 중 일부다. 1996년 남포동 골목에서 쏘아 올린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달 스물아홉 번째 항해를 마쳤다. 그동안 BIFF는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아시아 영화제 중 후발 주자로 출발했지만 빠른 시간 안에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하며 부산을 대표하는 문화 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BIFF의 여정이 항상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2014년에는 영화 ‘다이빙벨’ 상영 논란으로 위기를 맞았고, 지난해에는 지도부 사퇴 등 내홍도 겪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BIFF는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노력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통상적으로 한 세대를 30년으로 본다면 내년이면 BIFF는 한 세대를 맞는다. 서른 돌은 한 시대의 종착점이자 새로운 30년을 준비하는 출발점이다. 이에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BIFF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타 장르와의 연계다. 또 다른 하나는 주변 공간의 활용이다. 특히 타 장르와의 연계는 BIFF의 확장성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이제 BIFF는 단순한 영화 행사가 아니다. 부산과 이 시대의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지금까지 BIFF는 영화라는 틀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영화인만 즐기는 축제라는 지적이 이를 말해 준다. BIFF는 영화 축제를 넘어 문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화제 개폐막식 때 영화인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초청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영화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BIFF는 모든 게 영화로 시작해 영화로 끝난다”고 얘기할 정도다. 이는 영화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는 뼈 있는 충고이기도 하다. 이제는 ‘비욘드 시네마(Beyond Cinema)’를 추구하며 타 장르와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영화제 기간 영화의전당뿐만 아니라 부산시립미술관이나 복합문화공간 F1963에서도 영화 관련 주제 전시나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개폐회식 때 부산 시립교향악단의 선율을 감상하지 못하란 법도 없다. 이렇게 영화와 다른 예술 장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문화의 바다는 BIFF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매년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의 여름 임시 별관을 설계해 건축의 최신 트렌드를 선보이는 전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성된 파빌리온이 서펜타인 갤러리에 남아 건축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예술 작품으로 거듭난다. 그동안 자하 하디드, 프랭크 게리 등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했으며, 올해는 한국의 조민석 건축가가 선정돼 그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BIFF에 적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BIFF의 ‘배우 특별전’을 서펜타인 파빌리온처럼 기획해 보는 것이다. 국내외 유망 건축가들을 통해 배우 특별전을 파빌리온 형태로 영화의전당 앞 APEC 나루공원에 설치해 시민들이 관람할 수 있게 한다면, BIFF는 더욱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멋진 건축물이 모여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과 같다. 또한 이러한 파빌리온은 시민들에게 ‘일상 속 영화 향유’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영화의전당이 건물 앞 도로 지하화를 통해 APEC 나루공원과 수영강에 이르는 ‘영화의광장’으로 진화 발전하는 만큼 이에 대한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 단절돼 있던 길을 영화라는 끈으로 이어주면 금상첨화다. 이를테면 BIFF 개막식 때 초청 배우들이 배를 타고 수영강을 통해 영화의전당으로 진입하는 것이다. 수변 공간을 활용한 이벤트를 추진하면 BIFF의 인지도도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 밖에 F1963의 현대모터스 전시관처럼 기업 유치를 통해 1층에는 자동차 전시관, 2층에는 영화관을 만들어 공간의 확장을 가져오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영화의전당 인근 빈 공간을 활용하면 된다.
몇몇 영화인들은 “BIFF가 오로지 영화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융복합을 통한 확장이 필요하다. 이제는 영화를 넘어 문화, 월드 비전까지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러한 제안은 BIFF가 서른 돌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볼 때면/ 나의 가슴은 설렌다/ 내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나 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거니/ 나 늙어진 뒤에도 제발 그랬으면.’ 영국의 계관시인 W 워즈워드의 ‘무지개’라는 시다. BIFF가 그런 설렘의 대상이면 좋겠다. BIFF의 ‘서른’을 기대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