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갈미조개의 실종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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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푸드는 ‘추억의 맛’을 살려낸다. 어디에 있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접하면 가족,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화학첨가물로 범벅이 된 정체불명의 초가공식품, 냉동식품, 생산 이력이 불확실한 식재료가 식탁을 점점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농어업의 후퇴와 지역 특색의 소멸, 지역 경제의 쇠퇴로까지 이어진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자신이 먹는 식재료가 어디에서 왔으며,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이 함께하는 건강한 음식과 행복한 삶을 원하기 때문이다. 로컬 푸드는 사람들을 자신의 지역으로 다가가게 하고, 인근의 농어민과 교감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낙동강과 바다가 합쳐지는 부산의 명지, 녹산, 하단, 대저 등지는 매력적인 식재료가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재첩과 청게, 꼬시래기, 고랑치, 웅어, 갱갱이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조갯살이 갈매기 부리처럼 생긴 ‘갈미조개(학명 개량조개)’도 낙동강 하구의 대표적인 로컬 푸드다. 다대포와 명지 앞바다, 가덕도 인근의 물이 깨끗하고 모래와 진흙이 섞인 바닥에서 서식한다. 낙동강에 기대어 사는 어민들은 배를 타고 명지 앞바다에 지천으로 깔려있던 갈미조개를 잡았다. 쫀득쫀득 씹히는 감칠맛이 별미 중의 별미다. 한 입 베어 물면 짭조름한 바다의 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회나 수육, 샤부샤부로 먹기도 하고, 삼겹살을 함께 구워 먹는 갈삼구이도 일품이다. 갈미조개는 일 년 내내 잡히지만, 찬바람이 부는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가 제철이다.

이런 부산의 대표적인 로컬 식재료인 갈미조개 생산량이 급감했다고 한다. 지난해 생산량이 2022년에 비해 60% 이상 뚝 떨어지면서 부산 낙동강 하구의 향토 식재료가 사라질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폐수와 같은 오염물질과 육상 쓰레기 유입 등 인간의 탐욕과 난개발 탓이라고 지적되고 있다. 오죽했으면, 강서구청에서 오는 10월 명지 앞바다에 갈미조개 종묘 80만 마리를 방류한다고 한다.

로컬 푸드는 지역의 환경문제, 삶의 질, 공동체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갈미조개와 같은 향토 식재료가 사라지면, 세계인의 식탁에서 “부산의 맛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까. 하늘이 준 선물인 갈미조개의 실종이 부산의 맛과 부산다움, 행복한 삶까지 잃어버리게 되는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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