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은의 문화 캔버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장
문화예술 야간 행사 근래 들어 인기몰이
최첨단 미디어아트 결합 ‘명소’ 급부상
과학·예술 융합, 밤의 새로운 경험 안겨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노래 가사처럼 도시의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문화예술이 더해지면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밤에 행사를 마련해 성공을 끌어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문화유산 야행’이다. 고궁, 왕릉 등 고풍스럽고 조용하기만 하던 문화유산들은 특히 한밤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디어아트가 결합되면서 감동적일 뿐 아니라 최첨단의 가장 젊고 핫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밤에 모여서 즐기는 문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그 무엇보다 가스등과 전기의 발명과 발전 덕분이다. 1807년 영국 런던에 최초의 가스등이 설치되었고, 이어서 미국 볼티모어(1816년), 프랑스 파리(1820년)에서도 가스 조명이 대중화되었다. 가스 가로등은 사람들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가스등의 등장 이전 사람들은 밤에는 어떤 활동도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가스등이 나타나자 밤에도 공장이 돌아가고 상점이 문을 열었으며 사람들이 모이고 도시의 밤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음주 중심의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그 대신 저녁 시간을 문화예술 향유와 정신적 재충전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시민들의 욕구가 늘어났다. 그러나 문화예술 기관들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은 아직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에서는 일찍부터 미술관, 박물관, 고궁 등의 야간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해 이미 많은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이 밤의 문화예술을 즐기고 있지만, 지역에서는 이제 막 새로운 시도들을 하고 있는 중이다. (재)김해문화재단의 경우 올해 (재)김해문화관광재단으로 그 명칭을 바꿔 관광 분야에 힘을 실으면서 야간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도 8월 초 이틀간 ‘밤의 미술관’을 운영했는데 여기에 1200여 명의 관람객들이 다녀갔다. 힙합·팝핀·스트리트 댄스 공연, 성악가의 노래와 함께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뮤지컬 도슨트’ 프로그램 등으로 오후 9시까지 미술관을 운영한 결과였다. 미디어아트 작품 등으로 구성된 전시는 이렇게 댄스와 같은 퍼포먼스 요소가 더해지면서 관람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번 특별 야간 개장은 여름휴가 기간을 맞아 자연 속 미술관이 연출하는, 낮에는 볼 수 없는 밤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관람 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하고 전시관 두 곳을 연결하는 산책로에 은은한 경관조명을 밝혀 예술 속 고즈넉함을 즐기며 소중한 사람들과 달빛 산책의 추억을 쌓을 수 있게 했다. 미술관의 메인 전시관 돔하우스는 투명한 반구형 유리 돔 천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오후 6시에 문을 닫는 평소엔 천장을 통해 오로지 낮의 푸른 하늘만 보이지만, 야간 개장 때에는 네온사인과 영상이 별빛처럼 신비롭게 비치는 유리 돔 천장과 그 너머 밤하늘까지 볼 수 있다. 미술관은 야외 경관조명을 보강해 올가을과 내년까지 야간 운영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4~5월 김해가야테마파크에서 40일간 야간 개장으로 열렸던 일루미네이션 축제 ‘빛의 왕국 가야’도 관람객 7만 5000여 명이라는 개관 이래 최다 방문객 수를 기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김해 방문의 해’를 맞아 기획된 이 행사는 2000년 전 가야의 왕이 걸었던 야행 길을 재해석한 무지개 빛 호수, 가야 빛 왕궁, LED 꽃밭 등 다채로운 빛과 색채의 향연을 선보여 주말 저녁 5000명 이상이 방문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가야테마파크 야간 개장은 이달 7일부터 다시 시작한다. 특히 김해전국(장애인)체육대회 개최 시기에 맞춰 ‘가야 시민가요제’ ‘연어 음악페스티벌’ ‘드론 라이트쇼’ 등 여러 이벤트들을 잇달아 펼치며 연말까지 야간 개장을 이어갈 계획이다. 전국체전 등 주요 행사가 몰리는 10월에는 오후 10시까지 연장 개장한다고 하니 기대가 더욱 크다. 또 7일에는 김해에서도 부산 광안리에서 진행된 것과 같은 드론 라이트쇼를 볼 수 있다. 김해 분성산 150m 상공에서 500대 이상의 대형 드론들이 김해의 역사적 정체성이 담긴 특별 콘텐츠들을 화려한 빛으로 밤하늘 위에 그려낼 예정이다.
19세기 가스등과 전기로부터 시작되어 IT(정보통신) 기술이 접목된 첨단 미디어아트, 드론 라이트쇼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우리에게 밤이라는 시간과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놀라운 경험들을 선사하고 있다. 낮과는 또 다른 넘치는 매력을 감추고 있는 밤의 아름다움과 모든 것을 따뜻하게 포용하는 밤의 치유력을 많은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관광 프로그램 개발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