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 호수 위에서 만나는 혁신적인 오페라 무대, 브레겐츠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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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컨시어지 대표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오페라 '마탄의 사수' 공연 모습. 이상훈 제공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오페라 '마탄의 사수' 공연 모습. 이상훈 제공

오스트리아 서부 포어아를베르크주에 있는 인구 3만의 작은 도시 브레겐츠에서는 오늘날 가장 혁신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오페라 축제가 해마다 여름이면 열린다. 호반 위 수상 무대를 콘셉트로 하는 브레겐츠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3국이 맞닿아 있는 보덴 호수에 면해 있는 호수 도시라는 지리적 특성을 잘 살렸다. 작은 도시에서 열리는 축제라는 한계를 2년에 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강수를 두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방법으로 뛰어넘었다.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모습. 이상훈 제공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모습. 이상훈 제공

야외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오페라 축제는 음향학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로마의 카라칼라 욕장이나 베로나의 고대 원형경기장인 아레나, 그리고 오스트리아 빈 남부 장크트 마르가르텐에서 열리는 채석장 오페라 축제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넓은 야외무대와 7000석에 육박하는 브레겐츠는 사정이 다르다. 소리가 모일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마이크와 스피커를 써서 오케스트라 반주와 가수들의 소리를 객석에 전달한다. 스피커 위치에 따라 객석에 소리의 착시 현상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잔향을 조정할 수 있는 미국 메이어사의 콘스텔레이션 시스템을 적용한다. 오페라 가수가 어느 위치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무대에서 소리가 펼쳐지는 것처럼 들리게 한다. 다른 야외 오페라와 다르게 어느 정도 비가 오는 환경에서도 공연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가 실내에서 연주하기 때문이다. 연주는 빈 심포니 오케스트라 몫이다.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모습. 이상훈 제공 2024 브레겐츠 페스티벌 모습. 이상훈 제공

브레겐츠 페스티벌이 오페라 팬을 넘어 전 세계에서 주목받았던 건 2008년 개봉한 007시리즈의 22번째 영화 ‘퀀텀 오브 솔러스’에서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연출한 오페라 ‘토스카’ 무대가 스크린에 방영되면서이다. 필자도 그다음 시즌인 2009/10의 ‘아이다’를 시작으로 이번 달 24/25 시즌 작품인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까지 15년간 8편의 작품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마술피리’, ‘투란도트’, ‘카르멘’, ‘리골레토’, ‘나비부인’ 등 전작보다는 ‘마탄의 사수’가 자주 오페라 무대에 오르는 레퍼토리는 아니지만,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의 효시로 여겨질 만큼 음악사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 한 편의 컬트 무비를 보는 듯한 무대는 인상적이었다. 뮤직비디오와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독일 출신의 필립 슈톨츨이 예술감독을 맡았는데 장르의 경계를 넘어 혁신을 선보이는 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부산도 얼마 뒤면 오페라 극장을 보유하는 도시가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인구 300만이 넘는 메가 도시 부산은 신설되는 오페라극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여론이 존재한다. 인구 3만의 도시도 이렇게 멋진 오페라 축제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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