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장 사람들의 유산 [기자일기]
김동우 디지털총괄부 기자
야간부녀반장 박미경 씨는 ‘대가리’만 보고도 고등어를 7단계로 선별하는 30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평소엔 차분한 목소리로 커피와 함께 기자를 맞이하지만 현장에서는 180도 변했다. 작업자들이 일을 소홀히 하거나, 선사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판단될 땐 눈꼬리를 올린 채 거친 목소리도 냈다. “어시장은 저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했고, 활력도 줬고,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죠” 인터뷰 막바지, 그가 조심스럽게 건넨 말이다. ‘어시장은 삶의 전부’라는 그의 표현이 전혀 과장되게 들리지 않았다.
20년 경력의 양배반장 임종훈 씨는 어시장을 훤하게 꿰뚫고 있는 ‘빠꼼이’였다. 그의 설명 덕에 어시장의 퍼즐들이 하나둘 맞춰졌다. 그는 위판장 구역별 면적과 물량, 어종을 고려해 최적의 크기로 생선 상자를 배열하는 달인이기도 했다. 하지만 임 씨는 한사코 자기를 찍지 말라고 부탁했다. “못 배워서 힘든 일 한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아직 제 자식도 일하는 곳에 안 데려왔어요.”
현대화 사업을 앞둔 부산공동어시장의 역사와 사람들을 기록한 ‘피시랩소디: 바다와 식탁 사이’가 8개월 만에 마무리됐다.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어시장 사람들의 노하우와 가치를 사라지기 전에 담고 싶었다. 이들에게 일은 ‘밥벌이’ 이상의 의미였다. 선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야간부녀반과 양배반도 자신들의 작업 기준을 벗어난 요구까지 받아들이진 않는다. 전국 최대 수산물 위판장에서 자신들이 거래와 유통의 시발점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다.
이들이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쌓은 신뢰는 연간 3000억 원에 달하는 수산물을 어시장에 모으는 자산이 됐다. 부산이 얻은 ‘수산도시’라는 명성도, 그 명성에 걸맞은 어시장을 갖추기 위해 추진되는 현대화 사업도 결국 이들이 남긴 유산이다. 합당한 존중과 헌사가 따라야 하는 이유다. 몇 년 뒤 어시장에 들어설 최신식 건물 한쪽에 이들의 흔적이 담긴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이 흘린 땀의 기억, 어시장이 품었던 그 비린내가 잊히지 않길 바란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