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 부진에 AI·반도체 거품론까지… 한국 경제 고차 방정식 어찌 풀까
2분기 소매판매 2.9% 큰 폭 감소
수출 효자 반도체 위축 우려 제기
미국 따라 통화정책 변화 불가피
가계대출 급증 금리 인하엔 한계
미국발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에 중동 갈등까지 겹치며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내수 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수출까지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의 대응에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증시 주요 지수는 2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 2일 발표된 고용지표 여파로 미국 경기가 침체에 접어들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한국 역시 지난 5일 코스피가 전장 대비 8.77%, 코스닥은 11.3% 하락하며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증시 폭락 사태와 관련해 정부는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됐고 주요 빅테크 기업의 실적 우려와 일본 은행의 금리 인상 후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중동 지역 불안 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만 미국의 경기 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과 우리 경제가 입을 피해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내렸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해외발 충격으로 주식 시장에 한해 조정돼 과거와는 상이한 이례적 상황”이라며 “정부와 한국은행은 대외 충격에 따른 시장 변동성에 대해 충분한 정책 대응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 부총리는 이날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감원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F4 회의)를 개최했다.
하지만 문제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떠나 실물 경제의 피해 여부다. 특히 이번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AI(인공지능)·반도체 기업에 대한 ‘거품론’까지 제기되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수출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예상을 뛰어넘는 1.3%를 기록하는데 1등 공신인 셈이다. 만약 미국 AI·반도체 기업의 부진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반도체 수출에도 악영향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이 전면전에 나설 경우도 문제다. 정부가 간신히 안정 시킨 소비자물가가 유가를 중심으로 출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가가 오르면 우리나라의 수입액이 늘어 경상수지가 악화되고 물가에도 부담이 되는 구조다.
하지만 정부가 위기를 타개할 정책적 대안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내수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외 악재가 잇따라 발생한 점은 정부 입장에서 큰 부담이라는 점에서다. 지난 2분기 소매판매는 작년보다 2.9% 감소했는데 이는 2009년 1분기 이후 ‘최대 폭’ 감소다. 정부 재정도 제 역할을 못한다는 평가다.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전년보다 5.6% 감소하며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유력하다.
한편 미국 경기 침체 우려가 돌발 변수로 떠오르면서 국내 통화정책에도 영향이 불가피해졌다. 시장 일각에서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다음 달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한국은행의 ‘8월 금리 인하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중심의 아파트 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은 한은의 선제적인 금리 인하 결정을 제약하는 걸림돌로 지목된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