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는 왜 안 되나
“지역인재 전형으로 의대 가자”
서울 등 학원가 지방 유학 바람
“지역 의료 활성화” 구호 무색
지역에 의사 남게 하려는 대책
중구난방 제안 탓 실효 못 거둬
총괄 기구 통해 결과 도출해야
2025학년도 전국 의대 신입생 중 비수도권 대학에서 지역인재 전형으로 뽑는 인원이 1913명이다. 2024학년도보다 888명 늘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수도권 학원가에 분다는 소위 ‘지방 유학’ 바람이다. 현행 지역인재 전형에 따르면 비수도권 고등학교에 입학·졸업해야만 해당 지역 의대 지원이 가능하다.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까지 조건이 확대된다. 하지만 수도권에서 지방 유학을 꾀하는 의대 지망생과 그 부모들은 중학교, 심지어는 초등학교도 비수도권을 마다하지 않는다. 의대 졸업 후 수도권으로 돌아가 의사 노릇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정도 고생은 감내하겠다는 심보다.
이쯤이면 정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의대 증원의 상당 부분을 비수도권 의대에 배정했다. 피폐해진 지역 의료를 살려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였을 테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의대생들이 졸업 후 수도권으로 떠날 경우의 대안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지역인재 전형은 수도권 회귀를 염두에 둔 학생들의 의대 진학 방편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지역에 의사가 남도록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제안과 논의가 있었다. 지역의사제가 대표적이다. 지역 의대생에게 장학금 등 혜택을 주고 의사 면허를 취득하면 일정 기간 해당 지역 의료기관에 복무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있다. 지역의사제와 비슷하지만 지역 복무를 지자체 등과의 계약에 따르도록 한다. 공공의대 설립 주장도 있다. 여기 의대생은 장학금 등을 받되 10년간 지역의 공공 의료기관에서 복무해야 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의사 면허가 취소된다. 결이 좀 다르긴 하지만, 국방의대 논의도 진행 중이다. 장기복무 군의관을 양성해 필요에 따라 지역·공공 의료 부문에도 활용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게 없다. 지역의사제는 지난 21대 국회에서 야당 주도로 추진됐으나 무산됐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정부가 지난 2월 도입 방침을 밝혔으나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공공의대 설립 요구는 꽤 오래전부터 제기됐으나 성과는 없었다. 국방의대는 국방부가 지난달 “올해 안에 연구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기본적으로 장기복무 군의관 확보 방안일 뿐이다.
이러한 제도들의 한계점도 지적된다. 지역의사제나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는 의대생이 장학금을 반납하는 식으로 지역 복무를 거부해도 막을 방법이 없다. 기본권 침해 논란에 대한 법적 대안도 마련되지 않았다. 공공의대의 경우 10년 의무 복무를 강제하지만 인턴·레지던트 기간을 빼면 사실상 실제 복무 기간은 3년에 불과하다. 단기 의사양성기관에 그치게 되는 것이다. 국방의대는 군의관의 민간 영역 활용에 대한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파격적인 제안도 나왔다. 지난해 10월 당시 대한의사협회 임원이던 현직 의사가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올린 ‘사관학교형 의대 설립’ 제안이다. 부모의 능력과 무관하게 국가가 의사 되는 길을 열어 주고, 졸업자에겐 공무원 신분을 부여해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기관에서만 종사하도록 제한하자는 것이다. 공무원 신분에서 벗어나면 의사로서 활동을 금지하는 대안도 담았다. 시행만 된다면, 사관학교형 의대는 지역의 필수·공공 의료체계 확립에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청원은 의사 단체의 반발과 대중의 무관심 탓에 한 달 만에 폐기됐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방안들은 그동안 숱하게 제안·시도됐으나 매번 좌절됐다. 의사 단체의 반발 탓이 크다. 현행 의사제도의 틀 안에서 기득권을 유지한 채 자신들만으로도 충분히 지역 의료를 살릴 수 있다는 의사 단체의 주장은 오만하고 위험하다. 이왕에 현실이 된 의사 증원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선 사관학교형 의대 도입 같은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의사 되는 길을 다양하게 열어 놓고, 학생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일이 왜 불가한지 의사 단체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역의사제 등 충분한 논의 없이 법안부터 밀어붙여 부작용을 초래한 정치권과 정부도 반성해야 한다.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한 가장 빠른 지름길은 지역에 의한, 지역을 위한, 지역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다. 정부, 국회, 의료계, 시민단체를 아우르는 기구를 구성해 집중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처방이 중구난방이면 나을 병도 안 낫는 법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