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공중파 TV 드라마에 웬 한글 자막?
30여 년 만에 돌아온 드라마 ‘수사반장’
본방송에 사상 처음 한글 자막 내보내
“줄거리 이해 도움” vs “드라마 집중 방해”
편리함도 좋지만 핵심 놓친다면 곤란
1971년부터 1989년까지 방영된 TV 드라마 ‘수사반장’은 그 배경 음악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 타악기 주자 1세대로 꼽히는 류복성 씨가 지금도 생소한 ‘봉고’라는 악기로 서스펜스 수사물의 분위기와 딱 떨어지는 음악을 선보였다. “빠바바~ 바바바바!” 경쾌한 듯하면서도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긴박감까지 더해진 리드미컬한 봉고 소리는 수사반장의 상징으로 통했다.
온 국민의 기억 속에 각인된 수사반장이 최근 30여 년 만에 주말 드라마로 다시 돌아왔다. 세월이 흐른 만큼 출연진이 바뀐 것은 당연한데 공중파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서비스로 인해 시청자들 사이에 또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바로 한글 자막을 본방송에 처음 내보낸 것이다. 공중파 드라마에 모국어 자막이라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 모국어 자막, 68년 만의 첫 시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아닌 공중파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한글 자막이 본방송에 나온 것은 1956년 국내 최초의 드라마가 전파를 탄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햇수로는 68년 만이다. 우리말 드라마에 굳이 한글 자막까지 나오니 시청자들은 뜻밖이라고 여기면서도 신기해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왜 모국어 드라마에 한글 자막까지 넣어야 했을까. 우선 TV 시청자층이 고령화됐고 OTT의 대중화로 자막과 함께 보거나 줄거리 위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새로운 시청 습관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 제기된다. 방송사 측도 시청자들이 더 편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막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OTT를 통해 이미 자막에 익숙해진 상태여서 대체로 편리하다는 반응이 많다고 한다.
또 말썽 많은 층간 소음을 피해 아예 드라마 소리를 최대한 줄인 채 자막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이점도 든다. 게다가 카톡 등 문자를 통한 정보나 의사 전달에 익숙해 있는 점도 한글 자막의 확산 이유로 꼽힌다. 즉, ‘시끄러운 소리’보다는 ‘조용한 문자’가 낫다는 것이다.
■ 드라마 집중에 방해된다는 시각도
한글 자막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끄는 데는 일단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드라마 몰입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막을 읽으려고 집중하다가 오히려 중요한 장면을 놓치거나 흘려보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연출 의도는 물론 배우의 연기에 대한 집중도가 현저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줄거리만 따라가는 시청이 아니라면 연출 의도나 배우의 연기와 같은 드라마의 핵심 요소가 묻힐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한글 자막 없이도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드라마 속 배우의 대사를 알아듣기 쉽다는 게 자막이 필요한 이유라고 한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추가 작업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출연 배우도 더 정확한 대사 전달을 위해 평소 발성 훈련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예전처럼 연극 무대 등을 거쳐 방송 드라마나 영화로 진출하는 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연기에 도전하는 경우라면 더욱 발성 훈련을 통한 정확한 대사 전달에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어쨌든 엄연한 모국어 방송인데 소리 외에 자막까지 드라마에 등장하게 된 것은 갈수록 정보 전달 수단의 다양화라는 현 추세를 반영한 흐름으로 여겨진다. 다만 여기에 정보 과잉의 일상에 물든 현대인의 조급증이나 ‘빨리빨리’ 문화를 더 부추기는 경향으로 자막 문화가 확산한다면 이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듯싶다. 편리함과 빠름에 휩쓸려 정작 핵심 요소를 놓친다면 이 또한 무미건조한 일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